매일신문

'자산투자 덫'에 빠진 개미들

'한 건' 욕심이 제 발등 찍는다

차라리 로또는 확률이 낮아서 안 맞는다고 치자. 로또에 당첨돼 수십억원씩 받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날 때마다 '그래, 넌 복도 많아서 좋겠다'라고 한번 궁시렁거리면 끝이다. 로또는 안드로메다쯤에서 벌어지는 어느 누군가의 일이지만 부동산은 다르다. 바로 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내가 죽어라고 열심히 일하는 동안 누군가는 가만히 앉아서 몇년치 연봉을 벌어들이는 것을 보니 배가 아프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훨씬 더 이상하고도 열 뻗치는 일은 두 주먹 불끈 쥐고 부동산이며 주식 시장에 뛰어든 그 순간, 내 배를 아프게 했던 그 일들이 결코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들은 부동산과 주식투자로 '대박' 맞았다는 소리가 들리지만 어찌된 일인지 내가 산 아파트는 하루가 멀다하고 값이 떨어지고, 내가 산 주식은 심해탐사선마냥 가라앉기만 한다. 개미는 역시 개미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듣고 나면 무릎을 칠 '우리들 이야기'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3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한 A씨.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고민이 생겼다. 다름아닌 돈 문제. 가계부채가 감당못할 정도도 아니고, 주식 투자로 수억원을 날린 것도 아닌데 그의 전 재산은 2억원남짓한 아파트 한 채 뿐이다. 그는 두 가지를 후회한다고 했다. 재테크에 너무 무관심했다는 점과 장기적 안목을 갖지 못한 점. 그저 열심히 저축하는 것으로 노후를 대비했다. 물론 공무원연금이 있으니 늙어서 부부가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자녀들이 결혼할 때 집 한 채라도 장만해주고 싶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 젊은 시절 지방으로 순환 근무를 할 때, 지인들의 추천으로 땅을 몇 군데 사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넓은 집으로, 새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그 때마다 땅을 처분해 버렸다. 서너 차례 땅을 샀지만 보유기간은 2, 3년이 넘지 못했다. 만약 그 때 사둔 땅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면 그는 못해도 20억~30억원대 재산가가 됐을 거라고 말한다.

1990년대 중반 결혼한 K씨와 P씨. 비슷한 여건에서 출발했지만 10여년이 흐른 지금, 두 사람의 상황은 사뭇 달라졌다. K씨는 아파트 갈아타기에 성공하면서 재산이 5억여원에 이르지만 P씨는 여전히 8천만원 전세에 살고 있다. K씨는 처음 결혼하면서 20평형대 아파트를 장만했다. 당시만 해도 분양가는 5천만원남짓. 직장 생활로 모은 돈과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면서 아껴둔 결혼 비용, 은행 빚을 합쳐서 집을 장만했다. 하지만 P씨는 굳이 빚까지 내서 집을 살 필요가 있느냐며 전세로 시작했다. K씨는 결혼 3년만에 빚을 갚았고, 다시 3년 뒤 85㎡대 아파트로 갈아탔다. 최근 새로 85㎡대를 분양받으면서 일시적으로 1가구 2주택이 됐지만 기존 아파트를 당초 분양가보다 훨씬 높게 처분했기 때문에 세금 부담도 없었고 제법 짭짤한 시세 차익을 건졌다. 반면 P씨는 2000년대 들어서며 아파트 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하자 집을 장만할 엄두도 못냈고, 조바심 나서 시작한 주식 투자마저 크게 실패했다. 전세금 8천만원과 은행 예금 수백만원이 그의 전 재산이다.

올해 40세인 직장인 L씨. 3년 전쯤 주식시장과 작별했다. 앞서 5년간 나름대로 열심히 주식 투자에 몰두했지만 원금을 절반가량 날린 채 항복하고 말았다. "주식은 '나름대로' 해서도 안 되고, '열심히' 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겁니다." L씨는 대부분의 개미들이 실패하는 경로를 고스란히 답습했다. 장기투자를 결심해놓고도 주가가 조금만 오르면 환매를 했고, 오를만큼 오른 주식은 추가 상승을 기대했다가 매매 시점을 놓쳤으며, 하락장에는 손절하고 과감히 빠져나올 줄 알아야 했지만 바닥을 친 뒤에야 허둥지둥 팔았다. "어떻게 내가 사는 주식마다 값이 떨어지죠? 또 팔고난 주식은 왜 값이 오르는 겁니까? 아마 나와 정반대로 투자했다면 큰 돈 벌었을 겁니다."

◆도대체 왜 개미는 돈을 못 버는 걸까?

남 탓부터 해보자. 다소 음모론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재테크 전문가들 중 일부는 이른바 '시장 메이저 세력에 놀아나는 개미'에 대해 수긍하는 편이다. 주당 10만원인 A라는 주식을 대거 사들인 '큰 손'이 있다고 가정하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돈이 안 된다. 10만원짜리를 20만원에 팔아야 돈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A 주식에 욕심을 내 더 비싼 값에 사려고 해야 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장밋빛 전망이다. 증권가 루머 혹은 경제관련 리포트·기사를 통해서 A 주식이나 향후 업황에 대해 풍선을 띄우기 시작한다. 근거없는 거짓을 퍼트린다면 범죄가 되겠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계획, 신기술 개발, 실적 개선 등의 소식에 덧붙여 예상 주가는 30만원이라고 소문이 나면 개미들이 하나 둘 몰려든다. 이런 '큰 손'들의 움직임과 비슷한 시기에 움직일 수 있다면 돈 벌기가 땅 짚고 헤엄치기마냥 쉽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의구심에서부터 신중론까지 한몫하면서 개미들의 매수 시기는 한참 뒤처지고 만다. 결국 다 끝난 잔치에 부스러기라도 건져보겠다며 허겁지겁 달려드는 꼴이 되고 만다. 개미들이 20만원에 산 주식은 한 동안 조정을 거치는가 싶더니 골짜기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괜찮아질거야'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던 개미들은 주가가 15만원, 10만원으로 떨어지면 정신적 공황에 빠진다. 뒤늦게 개미들은 팔자로 돌아서고 추락하는 주가에 무게추를 달아주는 꼴이 되고 만다.

부동산은 이보다 좀 더 복잡하지만 비슷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개발 호재가 나돌 때는 이미 늦었다는 말이다. 대운하가 대표적인 사례. 아직 정부가 '대운하 포기'라고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한 때 낙동강 주변 소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들던 기획 부동산은 이미 한 차례 광풍을 불러일으킨 뒤 사라졌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땅값이 치솟았다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며 "농사밖에 짓지 못하는 땅을 시세보다 몇배나 더 주고 산 뒤에 허탈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했다.

중산층은 자산 투자에서 '거대 자본'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 투자분석가 '시골의사' 박경철씨가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을 살펴보자. '필자가 주식시장에서 느낀 점은 주식시장의 제도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선진화했으나, 시장 주변의 환경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시장은 여전히 불공정하고, 기관투자가들은 아직도 정직하지 못하며, 시장의 어두운 손들은 아직도 은밀하게 이슬을 맞고 다닌다. (중략) 아직도 더러운 자본과 추악한 주주들이 담합하고 음모를 꾸미면서 언제라도 한 건을 올릴 기회만 엿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민층은 재테크를 하려고 해도 돈이 없다. 부자들은 자산을 지켜줄 법적·인적 보호망을 갖고 있다. 결국 중산층의 몰락은 단순히 경기불황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먹이사슬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런 와중에도 돈 버는 길은 있다.

"어줍잖게 배운 지식으로 주식 투자한다고 나서기보다는 차라리 고수에게 무릎을 꿇고 '돈 좀 벌게 해달라'고 애원하는게 맞습니다." 다소 격한 표현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하나대투증권 김희석 대구지점장은 시장과 거꾸로 가는 개미들의 행태를 이렇게 꼬집었다. "신문과 방송에서 아무리 장기투자와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일단 개미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팔아야 할 주식은 보유하고, 보유할 주식은 팔아치운다는 겁니다. 값이 떨어지는 주식은 시장에서 호평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 때는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팔아야 하는데 조만간 오를 것이라며 팔기를 주저합니다. 값이 오른 주식은 좀 더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눈 앞의 이익 때문에 팔고 맙니다."

펀드라고 해서 안정적일까? 실제 한 증권사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조사한 결과, 대다수 펀드투자자들이 '뒷북투자'를 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팔아치운 펀드는 수익률이 치솟은데 반해 고수익을 믿고 자금이 몰렸던 펀드는 손실을 내거나 제자리 걸음 중이라는 것. 전문가들은 "대부분 투자자들이 주가가 오르면 펀드에 가입하고 주가가 하락하면 팔아치우려고 하는데, 주가가 등락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기 투자자세로는 수익률을 달성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펀드에 가입할 때만 해도 장기투자를 철석같이 결심해놓고도 시장 상황에 우왕좌왕하는 개미들에게는 차라리 1년 미만 단기 자금이면 정기 예금이 낫다고 말할 정도다.

워런 버핏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식 보유기간은 영원히"라고 말했고 실제로 장기투자를 실천하고 있다. 이달초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투자가 존 템플턴 경은 이런 말을 남겼다. "투자자에게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4단어는 'This time is different'(이번에는 달라)라는 말이다." 사람은 주변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인지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그저 자신이 보유한 주식만큼은 계속 오르거나 내림세가 멈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바로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안이한 착각 때문이다.

시카고 빈민가에서 태어나 13세 때 식품회사를 만들었고, 21세에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파라 그레이(1984년생). 최근 출간된 '스무살 백만장자 그레이'라는 책에서 그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자처럼 주식에 대해 잘 알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좋아하는 것에 투자할 경우, 시간이 흐름에 따라 투자대상의 가치가 증식되어 건전한 투자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고수들의 말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시장 흐름에 일희일비 하지않는 장기적 가치투자를 하라는 것. 말은 그럴 듯 하지만 결코 실천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증권회사 브로커는 이렇게 말했다. "개미들이 돈을 못버는 이유를 단적으로 말하면, '무식한데 욕심만 많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마찬가집니다. 한 방에 뭔가를 터뜨리기를 바랍니다. 은행 이자만 웃돌면 좋겠다고 말해놓고 정작 자기가 산 땅이나 주식이 몇 개월만에 수 배 또는 수십 배 튀기를 바랍니다. 이쯤되면 투자가 아니라 투기인 셈이죠. 어떻게 보면 개미 스스로가 놓은 덫에 자기가 걸려놓고는 그게 덫인 줄 모르는 겁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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