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20년 지난 지금도 생생한 설악산 '물침대 텐트'

학교와 집만 오고간 다분히 모범적인 고교생활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낭만에 올인한 대학생활을 시작한 1988년 조그만 가방을 액세서리 삼아 전공 책 몇권을 품에 안고 캠퍼스의 상큼 발랄 봄을 보내고 첫 여름방학을 맞았었다.

동아리에서 가는 설악산으로의 5박6일의 하계수련회는 처음 접하는 산행의 긴 일정과 야영을 해야 한다는 설렘과 기대 속에서 출발했었다.

처음 도착한 설악의 희문각은 자연의 비경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그저 외마디 감탄사로 대신했었다. 산 속에서의 첫날은 4, 5명이 들어갈 수 있는 삼각텐트가 맞이해 주었다. 힘들게 선배님과 동기들이 만든 그 공간은 마치 어린 시절 숨바꼭질의 숨는 공간이 되어주는 듯 좋았다. 조별로 들어간 텐트 속에서 마침 생일을 맞이한 나를 위해 초코파이를 쌓아 초를 얹고 축하도 해 주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만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대청봉을 향해 올라갈수록 밤 기온이 많이 내려가 한여름인데도 파카를 입을 정도로 추웠고 여름 날씨답게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밤새 떨며 텐트를 물침대 삼아 잔 기억도,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급조된 간이 화장실, 산의 기온 차로 밥이 설익기도 하고, 간간이 끓여 먹던 그 라면 맛 또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자락이 되어주었다. 다음날 산행을 위해 일찍 자라는 선배님의 말을 뒤로하고 밤새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운 것 또한 낭만 그 자체였다.

산을 오르는 자체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남자라는 이유로 무거운 텐트와 며칠 먹을 40명의 식량을 어깨에 나눠 메는 걸 마다하지 않았던 그때 함께한 동기와 선배님들. 자연과 함께해서일까? 스스로 인자요산을 확인하며 위로했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산 사랑은 졸업하고도 5년이 계속 되었었다. 그때 느낀 자연의 품이 좋아 지금의 나의 삶의 터전이 되었으니 모두가 불혹을 넘기고 중년을 바라볼 텐데 다들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유난히도 무더운 오늘, 그때 물침대 삼아 새우잠 잤던 텐트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김혜주(영주시 영주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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