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에는 미술인과 문인 등 예술인이 많다. 예로부터 산 푸르고 물 맑으며 인심이 좋아 삼청(三淸)의 고장으로 불렸던 곳이라서 그런 것 같다. 최근에는 연예인들도 청도에 잇따라 둥지를 틀고 있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최근 카페(니가 쏘다쩨)를 열어 화제가 됐는데, 가수 이동원(57)씨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청도군민이 됐다. 그는 4년 전 서울을 떠나 청도에 터를 잡았다. 1919년에 지었다는 오래된 초가집을 사들여서 개조했다. 마당에는 잔디도 깔았다. 라일락에 철쭉, 진달래를 심었고 소나무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시골살이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 이씨를 지난달 30일 그의 집에서 만났다.
애써 큰길가까지 마중 나온 그에게서 촌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슬리퍼에 반바지, 흰색 상의에 모자를 쓴 그는 멋쟁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만이 그의 시골살이를 말해 주었다. 노란색 나무 대문이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로 객을 맞았다. 마당에 깔린 푸른색 잔디가 눈을 사로잡았고 야트막한 담장 뒤로는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었다.
◆'향수' 속 이미지 찾다가 청도살이
-청도에 온 지 얼마나 됐나요?
"한 4년 됐어요. 청도하고 인연은 전혀 없었어요. 운문사는 자주 갔었죠. 운문사 가는 길이 참 좋아요. 친구하고 다니다가 '어디 시골집 하나 구해 살았으면 좋겠다' 했는데 여기를 소개해 주어서 찾아왔죠. 왔더니 폐가였어요. 나이 드신 할머니가 명이 다해 가는지 병원에 계셨어요. 그걸 사서 수리해 가지고 살고 있죠. 사실은 이런 집을 일부러는 못 구하죠. 시골에선 도시하고 다른데 어떻게 집을 팔겠어요? 값도 그렇고…. 그런데 어떻게 연이 됐어요."
-서울에서 살다 내려온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좀 멀다 뿐이지 서울에도 자주 가고 그러니까 특별히 크게 어려운 건 없어요. 처음에는 낯설어서 좀 그랬죠. 이젠 익숙해지니까 일하는 덴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다만, 서너 시간 정도 미리 부지런을 좀 떨어야죠."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불편하진 않나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좀 멀다 뿐이지 양평에 사나 여기 사나 똑같아요. 이곳 청도군민(그는 주소지까지 완전히 옮겼다)이 됐어도 전국 여기저기 다니니까 상관없어요. 혼자 사는 것도 불편하지는 않아요. 가끔 친구들도 오고. 청도에도 아는 친구가 하나 있어요. 전유성씨도 내려와 있고. 오토바이(50cc 스쿠터) 타고 전씨의 카페에 자주 가서 피자도 얻어먹고…. 그집 피자가 맛있어요."
-청도살이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환경이에요, 자연. 그리고 일단 여유롭고 한적하게 자기를 볼 수 있으니까요. 도시에 가면 일단 주변에 치이는 게 많잖아요. 서울에서 50년 넘게 살았어도, 청도에 내려온 지 이제 4년 지났는데 올라가면 벌써 답답해요. 일단 보이는 게 많으니까…. 도시는 도시대로 도시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시골에선 다양하게 느낄 수 있어서 좋기도 하고요. 공기도 물도 좋으니까 건강해지기도 했고요. (청도로 내려올 때 57㎏이었던 그의 몸무게는 이제 61㎏이다). 생활비도 서울에 비해 3분의 1이면 되죠."
-이웃 주민들이 알아보던가요?
"잘 모르죠. 여긴 촌이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은 다 도시에 나가 있잖아요. 다 나이 드신 분인데 대부분 농사 짓는 분들이라 잘 모르죠. 그러니 특별한 교류도 없고. 동네 행사 같은 것 있으면 떡이나 같이 먹고 그랬죠. 쉽지 않죠. 이젠 다들 아시겠죠."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오전 7시 30분이면 눈을 뜨고, 풀도 뽑고 이것저것 하니 여름에는 하루가 금방 가네요. 시골집이 크지는 않은데 혼자서 일하기는 바빠요. 그러다가 점심도 먹고 연습도 하고 책도 보고…. 일반적으로 소일하는 건 똑같죠. 그런데 여기에선 시간이 많아요. 이번엔 (10월 예정) 콘서트 준비도 하니까 연습도 해야 하고 많이 바빠요."
◆기타 하나로 시작한 가수 인생
(이동원씨는 요즘에도 이런저런 공연에 자주 다닌다. 지금부터 겨울까지 각종 축제와 행사로 계속 바쁘다고 했다. 10월에는 영국의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진 크리스 글래스필드와 공연도 펼치고 음반 녹음도 해야 한다. 이씨는 그의 히트곡 '골든랜드(Golden Land)'를 번안해 부르고, 그에게는 자신의 노래 '향수'를 번안케 한다.)
-선곡을 할 때 느낌을 많이 중요시하는데 '골든랜드'는 어땠나요?
"그 친구가 시인인데 노랫말이 뭔가를 생각하게 하고 멜로디도 상당히 동양적이에요. 일본인 부인하고 살고, 인도에서 공부도 해서인지 동양 정서를 잘 아는 것 같아요. 나도 시를 갖고 노래한 것이 많은데, 이 친구도 들여다보면 '시어를 다룰 줄 아는 아티스트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국에 가서 3시간 동안 이야기하고 그랬는데, '정서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느꼈어요."
-가수의 꿈을 언제부터 키웠나요?
"처음부터 가수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어요. 중학교 졸업하고 난 뒤에 집안이 쑥대밭이 된 적이 있어요. 공부하기도 좀 그랬고. 어떻게 기타를 배우게 돼서 명동에 나가게 됐어요. 그땐 한창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조영남 트윈폴리오가 활동할 땐데, 나도 그 팀에 어떻게 낀 거죠. 그때 음악을 배워서 명동에서 한 10년을 했어요. 그렇게 시작이 된 거에요. 그러다가 '어떻게 먹고사는 방법을 연구해야지 이거 되겠나? 가수가 되려면 내 노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만들게 된 게 '이별노래'예요. 이후로 앨범마다 시로 만든 것을 꼭 한두 편씩 넣고 싶어서 그렇게 했어요. 노래가 되는 시가 있고, 읽어서 충분한 시가 있는데 운율이 있는 그런 걸 선택해서 노래도 만들었죠."
-자신의 노래 중 가장 애틋하고 애정이 가는 노래는요?
"애정이라기보다는 슬픈 노랜데 '장미 그리고 바람'이란 노래가 있어요. 우리 선배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인데, 참 가슴이 아픈 노래죠. '이별노래'도 있지만 그 노래가 연민이 있다고 그럴까?"
(그래도 가수 이동원 하면 '향수'를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여의도 한 책방에서 시인 정지용의 '향수'를 읽고 한국어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린 그는 이를 노래로 만들었다. 그가 현재 집터를 선택하게 된 것도 환경이 향수 속 이미지와 닮았기 때문이다.)
◆'인간 이동원'의 음악과 삶
-대표곡 '향수'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향수'를 읽고 필(feel)이 와서 김희갑 선생한테 부탁했어요. 그런데 한 8개월 정도 걸렸죠. 그 동안 이거 한 곡에 매달려 아무것도 못하셨으니까요. (김희갑 선생은 그의 청을 한마디로 거절했다고 한다. 운을 살리기 힘들고 시도 길었기 때문이란다.) 나 생각해야지, 테너(박인수 당시 서울대 교수) 생각해야지, 또 시는 길지. 그러니까 '야, 이걸 어떻게 만드나?' 그랬던 것 같아요.
-박인수 교수는 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나요?
"예. '내가 미국서 공부할 때 이동원씨의 '이별 노래'를 듣고 위로를 많이 받았다'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곡만 잘 나오면 참 좋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곡 만들기 전부터 화제가 됐어요. 그땐 대중가수가 성악가랑 같이 작업하는 것도 없었고, 같은 무대에 선 적도 없었어요. 그리고 성악 하는 사람은 매우 귀족같았고 대중가요 하는 사람은 천민, '딴따라' 취급을 받던 시기였어요. 쇼킹한 거였죠. 그런 게 이젠 다 없어져 버린 거죠. '향수' 때문에 열린음악회도 생겼고 클래식하고 대중가요랑 같은 무대에 서게 됐죠. 사회적인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니 ('향수'의 등장이) 노래 자체보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거죠."
-음악을 하면서 다른 삶을 꿈꿔 본 적이 있나요?
"(단호하게)그런 적 없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은 사실 음악이 전부잖아요. 그 안에서 도전해 볼 게 많잖아요. 오케스트라하고 한 번 해본다든가. 음악은 행복한데, 진정 자기의 음악을 고집스럽게 하려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돈을 잘 못 벌어요. 경제적으로 가슴 아픈 적이 많았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달라고 했지만 그는 애써 에둘러 말했다.)"
-인생에서의 행복도 음악생활과 함께하나요?
"참으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어요. 사건·사고도 많았고. 삶은 환경이 어떻든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극복의 재미가 쌓여서 인생이고. 극복을 못하면 좌절도 하지만, 그래도 극복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에 아무런 걱정이 없으면 내가 뭘 하겠나?' '내가 뭔가 절실할 때 이루어지는 거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하면 정신상태가 되겠나?' 이런 거에요. 음악도 그런 거 아니에요? 항상 의식적으로 긴장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고, 적당히 텐션(tension)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책을 많이 읽으신다고요? 인생관에 영향을 미친 책이 있나요?
"옛날에는 많이 읽었는데 요즘엔 아니에요. 인생관에 영향을 미쳤다기보다, 내가 여태까지 잊지 못할 책이라면, 많은데요. 고등학교 때 읽었던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이란 책이 있어요. 그 책을 보고 대단히 놀랐죠. 그 다음엔 이문열 '사람의 아들'을 보고, '야, 이 사람 참 대단한 사람, 근사한 사람이로구나'하는 감동을 받았어요. 최근에는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가 쓴 '만들어진 신'(God Delusion)에서 굉장히 감동을 받았어요. 이런 책은 주위 사람한테 사 주기도 해요."
중학교 때 스피드 스케이팅을 하는 등 운동을 좋아한다는 그는 농구만 빼놓고 다른 운동은 거의 다 해봤다고 했다. 요즘에도 산에 오르고 자전거를 탄다고 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하는 이런 생활이 아직 하루 두어갑씩 피워대는 담배에도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비결인 것도 같았다.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시련도 겪었던 가수 이동원은 이제 청도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고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가수 이동원은?=혹자는 이동원을 '시로 노래하는 가수'라고 했다. 다른 이는 굳이 고풍스런 느낌의 '가인(歌人)'으로 그를 규정지었다. 이동원은 6·25 전쟁 중인 1951년 피란처 부산에서 이북이 고향인 부모님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듬해 상경해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1970년 솔로 가수로 데뷔해 '이별노래', '향수' 등의 노래를 발표했다. 지난 2004년 경북 청도에 정착해 청도군민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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