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 그런 데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
'피를 말리다'는 표현도 그렇다. 이 말의 뜻은 피를 졸아들게 할 정도로 극도로 긴장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의학적으로도 피를 말리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사람이 긴장하면 체온이 올라가고, 이 열이 피를 졸아들게 해 간을 손상시킨다고 한다. 한 사형수에게 시도한 '피 말리기' 실험은 많이 알려져 있다. 눈을 가리고 "지금 당신의 피가 한 방울씩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당신은 한 방울의 피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들려준다. 실제로는 출혈이 없이 눈만 가렸는데도, 사형수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극도의 긴장으로 결국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가장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것은 시간이다.
서양의 저승사자는 거대한 낫을 들고 나온다. 우리나라 낫은 앉아서 베지만, 서양의 낫은 서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거대하다.
이 낫의 주인공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크로노스. 그는 아버지인 제우스의 성기를 잘라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바로 '시간의 신'이다. 거대한 낫을 휘두름으로 시간을 끝내는 것이다.
시험 문제를 푸는데, 시간이 모자라 오금을 저려본 이들이 느낄 것이다. 제시간 앞에 끝내야 하는데, 시간은 시한폭탄처럼 째깍째깍 간다. 빚쟁이의 빚 독촉도 그렇다. 돈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시간은 죽음처럼 다가온다.
연극이나 영화에서도 이런 제한된 시간을 소재로 한 기법을 '타임라인 기법'이라고 한다.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 묻은 러닝셔츠 바람으로 뉴욕거리를 동분서주하는 '다이하드'나, 시간 안에 미래로 가야하는 '백 투 더 퓨처'가 피 말리는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다. 미국의 드라마 '24시' 같은 경우 아예 드라마와 현실의 시간을 맞춰 움직이는 액션 스릴러물이다.
우리가 공포영화를 볼 때 '손에 땀을 쥐다'는 표현도 '피를 말리다'와 유사하다.
여름에 공포영화를 보면 서늘하게 느껴지는 것은 땀 때문이다. 공포로 인한 긴장이 체온을 높여 열을 내고, 이 열이 땀을 흘리게 한다. 땀이 식으면서 체온을 떨어뜨리는 것이 '납량용' 공포영화이다.
최근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상황만 나열하는 공포영화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은 처음부터 지나친 긴장만 자극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가장 무서운 공포는 서서히 조여오는 것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비롯해 '오멘' 등 옛날 영화들이 오히려 더 공포를 느끼게 한다.
더운 여름날. 집에서 더욱 피 말리게 영화를 보고 싶으면 몇 가지 팁이 있다. 되도록 혼자서 밤에, 소리를 키워놓고 보라는 것이다. 공포영화의 포인트는 사운드다. 소란스럽거나 시끄럽고, 말 많은 파트너가 있다면 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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