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우체부가 위대한 시인 네루다를 만나면서 시에 눈을 뜨는 영화 '일 포스티노'는 감동적인 영화였다.
사랑하는 여인이 생기고 마침내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아파요. 하지만 계속 아프고 싶어요"라는 시적인 표현까지 하게 되는 그를 통해 우리는 위대한 사랑과 시의 힘을 느끼게 된다.
평범한 소시민이 위대한 인물과 만나는 영화는 대부분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슬프다. 가슴이 아릿한 우화다. 위대한 각하의 언저리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바쳐 봉사했지만 끝내 소중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웃겨도 웃을 수 없는 슬픈 자화상이다.
"사사오입이면 헌법도 고치는데, 뱃속에서 다섯 달 넘으면 애를 낳아야지."
대통령과 한 동네에 있는 효자이발관의 순박한 이발사 성한모(송강호). 그는 면도사 겸 보조로 일하던 처녀 김민자(문소리)를 임신시킨다. 그는 나라님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고 믿는다. 3·15부정선거에서도 투표용지를 먹어버리거나, 야산에 투표함을 묻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임신은 했지만 결혼은 않겠다는 민자를 설득한 것도, 나라의 정책이었던 '사사오입'으로 임신 다섯 달이면 사람 한 명으로 봐야 하니까 무조건 낳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시간은 흘러 1970년대. 역시나 서슬 퍼런 시절. 16년을 지켜온 효자이발관의 이발사 성한모의 인생은 어느 날 찾아온 청와대 경호실장에 의해 전환기를 맞는다. 간첩을 신고했더니, 그 간첩이 중앙정보부 직원이었을 줄이야. 속사정을 모르는 대통령은 성한모의 감시정신을 높이 사 '모범시민 표창장'을 하사하고, 이제 대통령 각하의 머리를 깎는 청와대 이발사가 된다.
"각하의 용안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안절부절못하지만, 속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어느 날 청와대 뒷산에 간첩이 침입하면서 그와 그의 가족은 간첩단에 휘말린다.
이발사의 눈으로 본 역사의 현장이 우화적으로 그려진다. 자유당 정권에서 흰 이발사 옷을 입은 그는 의사로 오인 받아 활약하고, 박정희 정권에서는 경호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의 팽팽한 대립 속에 서게 된다.
'포레스트 검프'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앞에서 실수를 하듯 이발사는 대통령이 연설하는 역사 속 한 장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간첩들이 모두 설사를 하고, 이발사의 초교생 아들이 간첩으로 오인 받아 고문을 당하는 등 역사를 뒤틀고, 그 속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은유하기도 한다.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결코 코믹하지 않은 결말이 소모적인 느낌이 든다. 힘든 역사를 이겨낸 소시민의 위대성을 더 부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이 권력을 가졌던 어떤 이들보다 더 위대한 일 아니었던가. 116분.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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