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멍에를 벗기 위해 아들딸을 이역만리로 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예전 우리도 저멀리 독일, 중동으로 아들딸 혹은 남편을 떠나보내고 가슴 졸인 세월이 있었다. 태국에서 만난 이주노동자 가족들의 심정도 똑같았다. 이들은 떠난 이가 한국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었다. 떠나는 이들은 한달 꼬박 일해도 한화로 5만원도 채 벌지 못하는 식구들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짊어져야 할 굴레라고 했다.
◆마음은 이미 고향집
"어머니께 꼭 전해 주세요."
지난 6월 25일 안산 시흥공단에서 만난 티파폰(35·여)씨. 2년 전 한국으로 돈을 벌러 온 그녀는 전날 찍은 사진을 주섬주섬 챙겼다. 혹시 잘못 나온 사진은 없는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찍은 사진은 없는지 엄마에게 보낼 사진을 고르고 또 골랐다.
"밝지 않은 모습은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할지 모르잖아요." 사진을 찍기 위해 거금 5만원을 들여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도 했다.
"다시 한번 잘 보세요. 고향집 길이 복잡해서 헷갈려요." 하얀 종이 위에다 고향집으로 연결된 도로 하나하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마음은 이미 고향집 문턱에 머문 듯했다. 행여 취재진이 고향집을 못 찾는 건 아닌지 티파폰씨는 집 앞 오솔길 하나까지 꼼꼼히 표시하고는 화살표까지 약도에 새겼다. 가이드, 통역 등 현지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는 취재진의 말도 미덥지 못한 모양이다. "모퉁이를 돌아 OOO로 들어가서 또 오른쪽으로 돌아가셔야 해요."
이로도 모자라 상세한 고향집 지리 정보를 빼곡히 약도 위에 써 넣었다.
"남편과 딸은 고향에 남겨 뒀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저 또한 두고온 딸아이와 엄마 생각에 밤 잠을 설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한국행은 어쩔 수 없었다
태국 호랏시에서 그녀의 소원대로 어머니 송마이 파띠(53)씨를 만났다. 그는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먼 곳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을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엄마를 꼭 좋은 집에서 호강시켜 주겠다'며 한국으로 떠난 지 벌써 2년이나 됐네요." 딸은 태국 대기업에서 편하게 근무하고 있다가 단지 '돈이 더 된다'는 이유로 한국행을 택해 어머니의 마음은 더욱 죄스럽다.
"스스로 가난한 가족들을 위해 한국으로 떠났어요. 얼마나 모질게 마음 먹었으면 8세된 딸아이를 놔두고 갔을까요." 현재 파띠씨의 가족은 티파폰씨가 매달 60만원씩 보내주는 생활비로 1천만원에 달했던 빚을 거의 갚았고 가정 형편이 크게 나아졌다고 한다.
◆언니의 노래-그리운 동생에게
"동생이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가족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어요. 지금은 동생이 보내준 돈으로 살림이 많이 나아졌어요."
호랏시 '메낀팽' 재래시장에서 내리쬐는 뙤약볕을 제대로 가리지도 못하는 낡은 파라솔 밑에서 17년째 바나나를 구워 파는 언니 티캄폰(37)씨도 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티캄폰씨는 "동생 대신에 제가 갔어야 하는데…"라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한달 내 가족 모두가 일해 봤자 10만원을 채 못 벌었고 돈 때문에 고통이 많았어요."
언니는 일부러 동생과의 전화 통화도 자주 하지 않는다. 동생은 항상 밝은 모습으로 전화를 걸어오지만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안쓰러워서다.
"언젠가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행복하게 살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까지 동생이 보고 싶더라도 참을 겁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사진=다문화공동기획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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