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크린 골프, 불·탈법 해저드에 빠졌다

올초 골프에 입문한 권모(52)씨는 지난주에 '좋은 곳이 있다'는 직장 동료들의 유혹(?)에 넘어가 한 스크린 골프장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 들어서자 기분은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직원은 권씨 일행을 분리된 룸으로 안내한 후 '술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도우미 필요하세요?'라고 물었다. 깜짝 놀란 권씨는 "여기가 룸살롱이냐?"고 되물었다가 동료들로부터 "촌스럽게 왜 이러냐"는 핀잔만 들었다.

양주와 맥주가 나오고, 여성 도우미가 들어와 골프공을 티박스에 놔주는가 싶더니 곧바로 합석해 술까지 따르기 시작해 금세 술자리로 변했다. 권씨는 "골프 연습장이 유흥주점과 다를 바 없었다"고 했다.

◆동네마다 몇개씩…난립하는 스크린 골프장

2002년 국내에 처음 등장한 스크린 골프장은 대구에서도 2, 3년 전부터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해 현재 200여개(전국적으로 4천여개)에 이른다.

스크린 골프장은 현행법상 '체육시설'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나 입점이 가능하고, '신고제'이기 때문에 등록과정에 특별한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18홀 1게임의 경우 1만5천원~2만5천원의 저렴한 이용료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수성구, 달서구 등에는 동네마다 몇개씩의 스크린 골프장이 난립하다 보니 일부 업소에서는 술과 여성 접대부를 고용하고 도박장으로 변질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한 업주는 "500m 반경안에 5개나 들어서 있다"며 "우린 정상영업을 하는데 다른 골프장에서 술자리를 제공하고 여성 도우미까지 불러주는 바람에 손님이 갈수록 준다"고 걱정했다. 현행법상 스크린골프장은 '체육시설'이기 때문에 주류나 접대부를 제공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술·접대부·내기판'까지….

대구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박모(46)씨는 한달 전부터 아예 '스크린 골프장'을 접대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여성 도우미 비용으로 시간당 2만원을 내고, 스크린 룸안에서 술까지 접대해도 야외 골프장의 이용료에 비해서는 몇 배는 싸게 먹힌다고 했다. 그는 "필드에 나가는 것보다 술과 골프를 동시에 접대하는 편이 훨씬 낫다. 접대를 받는 사람들도 더 좋아한다"고 했다. 흥이 오르면 접대부들과 자리를 옮겨 아예 노래방 등으로 술판을 이어나가는 경우도 있다.

한 업주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스크린 골프장과 술집을 동시에 운영하는 곳도 있다"며 "가게 사이에 자동문을 만들어 술을 마시다 스크린 골프장으로 직행하곤 하지만 두 업소가 분리돼 있어 합법"이라고 말했다. 스크린골프장에서 불러주는 여성 접대부 상당수는 노래방에 도우미를 공급하는 보도방에서 온다고 했다.

스크린 골프장의 내기 골프도 수위를 넘고 있다.

또다른 업주는 "야외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한 뒤 2차로 오는 손님들이 많다. 1타당 몇십 만원씩 내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고, 18홀 한 라운딩을 마치면 많게는 몇백만원까지 잃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 라운딩 내기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은 스크린 골프에서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판돈'을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어서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스크린 골프장에서 내기 골프를 붙이는 경우도 많다.

한 구청 공무원은 "스크린 골프장에 대한 단속이 절실한 실정이지만 단속 인력이 부족해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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