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지도자의 길

병자호란 당시 청장(淸將) 마부대(馬夫大)는 임경업 장군이 이끄는 의주의 백마산성을 우회해 곧바로 남하했다. 이들이 강화도로 가는 길을 끊는 바람에 인조는 대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이때가 인조 15년(1636) 12월 14일. 병사들이 얼어죽는 한겨울의 포위된 산성은 농성 장소가 될 수 없었다. 청나라는 항복 조건으로 세자를 인질로 요구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조선은 대책 없는 결사항전만 외칠 뿐이었다. 이 문제를 스스로 푼 인물은 소현세자 자신이었다. 세자는 "일이 너무도 급박해졌다. 나에게는 일단 동생이 있고 또 아들도 하나 있으니, 역시 종사(宗社)를 받들 수 있다. 내가 적에게 죽는다 하더라도 무슨 유감이 있겠는가. 내가 성에서 나가겠다는 뜻을 말하라.('인조실록' 15년 1월 22일)"면서 자기희생으로 난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인조실록' 15년 2월조는, "당시 육경(六卿:판서)은 아들을 오랑캐에게 인질로 보내야 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회피하였다"라고 전하고 있다. 아들을 인질로 보내지 않기 위해 사퇴하는 벼슬아치가 잇따랐다.

전쟁 전에는 누구 한 사람 화친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입만 열면 척화요 주전론이었다. 청장 마부대가 "조선은 아녀자의 나라인데 무엇을 믿고 저러는가"라고 조롱할 정도로 이상에 치우친 주전론이었다. 이때 주화론(主和論)을 주창한 소수 중의 한 명이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이었다. 그는 "척화 일사(一事)가 어찌 정대하고 명쾌하지 않겠는가마는 국사와 민심이 한 가지로 믿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사세를 돌아보지 않고 강적에게 분을 돋우는 것은 계책이 아니다"라면서 주화를 주장했으나 척화의 드높은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막상 항복하고 나자 청 태종 공덕비인 삼전도비문(三田渡碑文) 찬술이 현안이 되었다. 항복한 이상 비문 찬술은 일종의 통과의례였으나 척화론자들은 비록 항복했어도 삼전도비문은 쓸 수 없다고 거절했다. 비변사의 추천을 받아 반강제로 몇 사람의 글을 받았으나 조희일(趙希逸)은 일부러 글을 거칠게 지었고, 이경전(李慶全)은 병 때문에 사양해 할 수 없이 이경석이 써야 했다. 나라의 운명이 경의 글에 달렸다는 인조의 부탁 때문에 비문을 개찬한 이경석은 공부를 가르쳐 준 형 이경직(李景稷)에게, "글공부를 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됩니다"라는 회한의 편지를 썼다. 자식을 인질로 보내지 않기 위해 사직하는 판국에 이경석은 세자 이사(貳師)로서 심양에 가서 세자와 함께 지냈다. 이런 와중인 인조 20년(1642) 명나라 선박이 선천(宣川)에 정박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경석은 책임자로 몰려 만주 봉황성에 구금되었다가 8개월 만에 '영원히 서용하지 않는다(永不敍用)'는 조건으로 겨우 석방되었다. 효종 때는 김자점(金自點)이 청에 북벌계획을 밀고하면서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청나라에서 사문사(査問使)가 나오자 효종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사대부 집안에서는 피란길에 나서는 등 인심이 흉흉해졌다. 이때 이경석은 "저들이 힐책할 경우 신이 직접 담당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라가 무사하다면 신이 어찌 감히 몸 하나를 아끼겠습니까"라며 책임을 자청했다. 효종은 "경의 나라를 위한 정성이 간절하다 할 만하다"라고 감격했고 청천강을 건너 북상하던 이경석은, "한밤에 충신한 마음으로 강을 건너니/ 이 마음 오직 귀신만 알 뿐이로다(半夜直將忠信涉/ 此心惟有鬼神知)"라는 시를 지어 결의를 나타냈다. 청나라는 이경석을 '대국을 속인 죄'로 극형에 처하려 했으나 효종이 막대한 뇌물을 쓰며 적극 구명에 나서 겨우 목숨을 건지고 의주의 백마산성에 갇혔다. 그가 다시 '영원히 서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년 만에 석방되어 귀국하자 사민(士民)들이 길가에 몰려들어 환호했다. 일신을 돌보지 않는 충성을 백성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나라가 어려움에 빠졌다는 우려의 소리는 높지만 고위 공직자 그 누구도 자신의 몸을 던져 싸운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치 자식을 인질로 보내지 않기 위해 사직하거나, 피란 보따리를 쌌던 조선의 사대부들을 보는 듯하다. 소현세자나 이경석은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난국에 먼저 몸을 던지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다. 이 간단한 사실도 모르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이덕일(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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