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날개/윤은경

젖은 하늘을 휙 가르며 어치가 날아간다

죽음 전엔 내려놓을 수 없는 지상의 무게는 나비날개에도 얹혀 있다

가장 낮은 곳에 무릎 꿇고 앉은 풀꽃 송이가 허공에 흘려 놓는 깨알 같은 향기

날개들은 수천 리 먼 길을 간다

한 줄기 엷은 향기만으로도 도르래처럼 지상을 들어올린다

하늘에 새들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매미소리 들리지 않는 여름 한낮처럼 얼마나 기괴스러울까. 어치가, 몸집이 큰 새가 비 막 그친 하늘을 휙, 날아가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어치에 날개가 달려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무거운 우리의 마음 들어 공중에 둥실 올려주니까.

새, 나비 같은 날개 가진 존재들이라고 죽음을 피할 수 있으랴. 새끼 거두고 제 몸 건사하는 일의 '지상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으랴. 이러한 삶의 이치를 겸허히 깨달은 '풀꽃 송이'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흘려 놓는 '깨알 같은 향기.' 있는 듯 마는 듯 희미한 그 향기 때문에 우리 존재는 '도르래처럼 지상'에서 들어올려 '수천 리 먼 길'을 떠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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