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이럴 땐 시원한 산이 제일이다. 지난 주말, 텐트를 들고 영덕 칠보산자연휴양림을 찾았다. 배낭에 끼워 간 책은 지난해 10월 새롭게 번역 완간된 중국 진융(金庸)의 무협소설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였다. 무협지를 즐겼던 40, 50대라면 20여년 전 '영웅문'이라는 이름으로 무단 출간된 이 책을 이미 읽었을 터이다. 바람이 잘 지나는 곳에 텐트를 치고는 생각없이 이 무협소설을 읽으며 이틀을 보낼 계산이었다.
세상을 잊고 무협지에 파묻히겠다는 계산은 바둑 훈수를 두는 장면이 나오는 제1권에서 틀어졌다. 해마다 집요해지는 일본의 독도 도발 문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흔히 바둑을 둘 때 정작 당사자들보다는 어깨 너머로 보는 훈수꾼들의 형세판단이 정확하다. 실력은 당사자들보다 못하지만 전세는 보다 정확하게 짚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일본은 매년 독도문제를 끄집어내 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르르 독도로 몰려가 태극기를 흔들고, 주일대사를 소환하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혈서를 쓰고, 동도와 서도를 연결하자거나 독도보전특별법을 추진하자는 등 방안들을 쏟아냈다. 즉흥적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대국자에서 잠시 벗어나 훈수꾼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때론 대국자들이 보지 못하는 기막힌 묘수를 볼 수 있는 것도 옆사람이다. 한 발 물러서서 냉정하게 일본의 노림수가 뭔가를 살펴보자.
일본은 독도를 바둑의 '패'로 활용할 속셈이다. '패'가 뭔가? 서로 접해 있는 흑돌과 백돌이 한 수를 두면 따낼 수 있는 단수로 맞물린 상태다. 이럴 땐 상대방이 따내면 바로 따내지 못하고 다른 곳에 한번 둔 후 상대가 받으면 다시 돌아와 따내는 것이 규칙이다. 이렇게 다른 곳에 다녀오는 것을 '팻감을 쓴다'고 한다.
일본은 지금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에 패를 걸어왔다. 앞으로 일본은 수시로 팻감을 쓰며 다른 이득을 취하려 할 것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장기화하는 것도 일본이 쓸 팻감이다. 그러면서 독도 주변의 천연자원이나 수산자원을 좀 더 나누어 가져가려는 계산을 하는 것이다. 더 악랄한 팻감은 일본이 한국 러시아 중국 대만과 분쟁을 일으켜 정치외교뿐 아니라 군사력을 키우는 데 명분을 쌓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의 패에 걸려들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 패로 인해 단단히 발목을 잡힐 우려가 있다.
일본은 사실 곳곳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며 이런 팻감을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러시아령으로 되어있는 쿠릴 열도(일본명 북방 영토) 4개섬의 반환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반면 중국, 대만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선 쿠릴 열도와는 정반대 입장을 보인다. 자기들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 내세워 '영토 문제의 대상이 아니다'며 가급적 거론하지 않는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기가 막힌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독도 도발은 앞으로 더 집요하고 더 확대될 것이란 전망을 한다. 팻감을 찾기 위해 혈안이란 말이다. 열쇠는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다. 대응은 조용하지만 일본보다 더 집요해야 한다. 독도에 사람이 살고 있으며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어야 한다는 국제법상의 조건을 확보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본이 불과 수십㎝ 높이에 넓이도 고작 2m×5m에 불과한 산호초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만든 오키노토리처럼 독도를 넓혀가는 것은 어떨까 싶다. 오키노토리는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1천740㎞ 떨어진 2개의 암초다. 암초는 국제법상 영토가 될 수 없기에 일본은 산호초 위에다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 반경 25m의 인공섬을 만들고 등대까지 설치했다. 그러고는 이를 기점으로 EEZ를 설정해 중국, 대만과 분쟁 중이다.
오키노토리와 독도는 비교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독도는 동해상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도 어업인숙소 뒤편 계단을 올라 서도 정상부근을 거쳐 건너편 물골로 하산하다 보면 섬괴불나무, 동백 등의 나무숲을 볼 수 있다. 식물종수는 80여종에 새의 종류만 해도 120종이 넘는다. 바다엔 어른 팔뚝만한 홍삼과 난, 한류 어종도 함께 볼 수 있다. 몽돌해안도 4곳이나 되고 서도엔 식수로 쓸 수 있는 물골까지 있다.
독도사랑은 이런 독도 바로알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일본이 쓸 만한 팻감을 미리 없애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괜히 팻감을 교환하려다 보면 상대의 毒手(독수)에 덥석 걸려들 소지만 많아질 뿐이다.
박운석(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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