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성로에서 길을 묻다] ⑨열정과 인내가 필요하다

도심 뉴타운을 통해 도시 부활을 추진하려는 이명박 정부 정책에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를 앞두고 대구 도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대구 중구청은 2011년까지 '동성로 거리정비 및 문화산업 육성센터 조성' '신천 문화테마파크 조성' '약령시 한방특구 활성화' '패션주얼리특구 활성화' '봉산문화거리 재정비' '대구읍성 주요시설 복원' '경상감영 객사 복원 및 전통문화거리 조성' '달성토성 정비' '근대문화골목 디자인 개선' '서문시장 야시장 개설' 등 10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개별 프로젝트의 타당성과 재원 확보 방안은 제쳐 두고라도, 이런 식의 사업으로 과연 4년 만에 대구 도심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대도시의 도심은 온갖 이해관계들이 얽히고 설킨 '욕망'과 '탐욕'의 공간이기도 한 탓이다. 때문에 도심재창조 과정에서는 행정기관과 개발업자, 보존론자, 살고 있는 주민, 도심을 이용하는 시민, 상인, 거리 예술가, 노점상, 심지어 노숙자들의 이해관계까지 투영될 수밖에 없다.

◆타임스퀘어의 부활이 주는 교훈=타임스퀘어는 뉴욕의 중심이자 미국의 중심이며 세계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런데 '42번가의 기적-타임스퀘어의 몰락과 부활'의 저자 제임스 트라웁(도시저널리스트)은 "(1990년대 이후) 우리가 보고 있는 뉴욕 42번가는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때로는 애정을 기울여 재설계한 도시공간"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가서 걷고 즐기고 싶은' 이 타임스퀘어가 1960, 70년대 마약과 섹스 산업의 거점으로 타락한 더럽고 병적인 곳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리고 뉴욕 사람들이 타임스퀘어에서 마약과 섹스 산업을 걷어내고 전성기의 영광을 회복하자는 결정을 내리는 데만 무려 3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관 주도 방식의 부수고 짓고 포장하는 개발시대 패러다임으로 민주사회의 도심을 새롭게 창조할 수 없는 것이다.

트라웁은 또 그의 저서에서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것을 즐기려고' 뉴욕, 도쿄, 파리, 뭄바이 등 대도시를 찾는다"며 "(타임스퀘어) 재개발 과정에서 지역 특수성과 개성이 없어지고, 골목길과 아주 작은 마을들이 사라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요코하마의 도시 만들기=요코하마시 도시정비국 구니요시 나오유키 수석디자이너가 올해 1월 대구를 방문했다. 도시디자인과 도심재창조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대구에 경험담과 조언을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눈길을 끈 것은 그가 지난 37년 동안 도시디자인 관련 업무를 지속적으로 맡아왔다는 점이다.

"담당자가 자꾸 바뀌면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최근에 한 시민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30년 전, 집을 새로 지을 때 지켜야 할 규정이라는 홍보물을 시로부터 받았는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문의였습니다. 그런데 그 홍보물을 만든 사람이 바로 저였기 때문에 잘 설명을 해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제가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이런 서비스를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나오유키씨는 "디자인이란 혼란스런 요소들을 배제하고, 필요한 것을 부가해 가는 과정"이라면서 "시에서 결정한 콘셉트와 정책을 민간부문에 무리하게 강요하지 말고, 개보수 등 민간부문에서 수요가 생겼을 때 정책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무엇이 가능한가부터 생각해 실천하고, '20년은 기다린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발상을 전환하라=지난해 10월 대구 도심은 '분지의 바람' 기획전으로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재건축을 앞두고 도심의 흉물로 남아있던 낡은 아파트 삼덕맨션이 젊은 예술가들의 전시장으로 변한 것이다. 아파트 외벽은 그라피티(낙서예술)로 장식됐다. 옛 아파트 방 칸칸마다 설치된 회화, 사진, 설치예술품 등이 지나던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들였다. 도심의 이색 전시회는 당초 계획된 2주보다 한 주 더 늘어난 3주간 계속됐다.

매거진 '안' 안진희 대표는 "도심재창조는 도시를 어떻게 읽어내고 규정하느냐에 달려있으며, 도시의 '동선'을 창조하는 일과도 같다"고 말했다. 동성로 인근에 위치한 대구중앙도서관이 대구 각 지역의 문화적 거점을 통솔하는 정보의 스테이션이 되고 관광정보센터, 문화예술회관, 시민회관 등은 플랫폼의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구문화 임언미 편집장도 "공연장과 전시장의 각각 39% 및 48%가 도심에 밀집되어 있다"면서 "기존의 문화공간과 자생적인 문화단체들이 보다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조금만 정책적 지원을 해도 도심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택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장(전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은 "사람이 모이는 매력 있는 도시를 만드는 트렌드는 과거 테마파크, 디즈니랜드 모델의 리조트형 개발에서 복합형·생활형 개발로 변화하고 있다"며 "하드웨어(건물·시설)와 소프트웨어(문화·예술·재미·아기자기함)가 함께 어우러지는 하이브리드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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