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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골드 물의 전쟁] ⑥생수, 2010년엔 2조 규모

▲ 생수시장은 웰빙·로하스바람을 타고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대구시내 한 백화점에서 소비자가 생수를 고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co.kr
▲ 생수시장은 웰빙·로하스바람을 타고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대구시내 한 백화점에서 소비자가 생수를 고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co.kr
▲ 생수가 담긴 PET병들이 생산라인을 거치고 있다. 상주 건영식품 제공
▲ 생수가 담긴 PET병들이 생산라인을 거치고 있다. 상주 건영식품 제공

얼마 전 눈길을 끄는 외신뉴스 하나가 신문 지상에 소개됐다. 남극 빙하로 제조된 칠레산 고급 먹는샘물(생수)이 올가을 출시된다는 내용이었다. 부유층들을 겨냥한 이 생수의 가격은 750㎖ 한 병에 무려 3만5천원. 그야말로 물이 휘발유보다 더 비싼 세상이다. 국내 음식점에서도 유럽처럼 돈을 주고 물을 사먹어야 하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를 일이다.

매년 10% 이상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생수시장에는 최근 대기업들이 잇따라 진출한 데다 지자체까지 가세할 태세여서 치열한 물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석유보다 비싼 물

6일 대구시내 D백화점. 식품부 한쪽에 마련된 먹는샘물 코너에는 외국어로 요란하게 포장된 수입산 생수와 국내산 생수가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이 매장에서 파는 제품은 10여종. 500㎖ 1병당 가격은 국산 일반제품의 경우 290~380원, 심층수는 1천200원 수준이지만 프랑스 제품은 970원, 일본 제품은 최고 5천원에 이른다. 이 백화점 이석종(41) 공산품 담당 과장은 "해외 유학·출장 경험이 많은 30대 후반~40대 초반의 남성과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수입 생수 주요 고객"이라며 "대구는 다른 지역보다 수입생수 호응도가 낮은 편이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세계 유명 생수제품 판매코너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 S백화점의 경우 한 병에 수천원 이상 하는 '럭셔리 생수'가 큰 인기다. 이곳 김은구(34) 생수 바이어는 "젊은 여성들은 값비싼 수입 생수를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가격이 비싸도 아이에게 좋은 물을 먹이고 싶어하는 주부고객들도 많다"고 말했다.

국내 생수 시장은 해마다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2000년 1천600억원, 2003년 2천515억원에서 2007년 3천900억원으로 증가한 데 이어 2010년에는 2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한 대형소매점이 전국 100여개 점포에서 판매된 상품의 매출 순위를 조사한 결과 생수는 전년 99위에서 79위로 껑충 뛰어오른 데 비해 탄산음료는 사상 처음으로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지난 2006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물 수입액도 349만달러(561만ℓ)나 됐다. 건강·웰빙·로하스(Lohas·건강과 환경이 결합된 소비자들의 생활패턴)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정착되고 주 5일제 근무제에 따른 야외활동 증가가 생수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기업에다 지자체까지 출사표

생수시장이 커지면서 출사표를 던지는 대기업, 중소기업도 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먹는샘물 제조업체는 70여개에 브랜드도 100개가 넘는다. '암반수' '빙하수' '산소수' 등 저마다 특성을 내세우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 여기에다 지난 2월 해양심층수법이 시행되면서 깊은 바다에서 끌어올린 해양심층수도 가세, 생수 시장 쟁탈전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경북 상주 화북면에서 취수, '가야 속리산 미네랄' 제품을 생산하는 건영식품 고숙진(40) 공장장은 "96년 첫 생산에 나섰을 때만 하더라도 전국의 생수업체가 20여곳이었는데 10여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었다"며 "시장확대는 반갑지만 가격경쟁이 치열해져 중소업체의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자치단체들도 생수 시장 진입을 타진하고 있다. 지난 1998년부터 생수 생산에 나선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는 최근 연간 생산량을 31만t에서 60만t 이상으로 늘리는 증설공사를 마무리했다. 제주도개발공사 기획혁신팀 강승희씨는 "내수시장뿐 아니라 일본과 동남아 수출도 협의중"이라며 "2010년 순이익 300억원이 목표"라고 말했다.

생수시장에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큰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지자체가 수돗물을 병에 담아 판매할 수 있도록 수도법과 먹는물 관리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적극적인 서울의 경우 '아리수'란 병입 수돗물 브랜드(연간 생산량 1천만병)를 내세우고 지난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판매 방법, 시기, 마케팅 전략 등을 짜고 있다. 판매가격은 시중 생수 가격의 1/3 수준으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구는 '달구벌 맑은 물', 부산은 '순수', 대전은 'IT's 水', 광주는 '빛 여울 水' 등 광역시들은 저마다 브랜드·생산시설을 완비하고 전담조직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비매품으로 병입 수돗물을 제공해온 대구상수도사업본부 장태옥 기획감사과장은 "연간 35만병 생산이 가능하지만 민간업체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판매할 계획은 없다"며 "관련 법 개정이 예정보다 늦어져 올해 중에는 지자체의 병입 수돗물 판매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병입 수돗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상그리아'란 자체 브랜드로 지난 2005년부터 병입 수돗물을 무료공급하고 있는 상주 상하수도사업소가 지난달 31일 공무원 246명을 대상으로 눈을 가린 채 물맛을 맛보도록 한 시험결과(Blind Test) 의외의 답이 나왔다. 가장 맛있는 물로는 '정수기 물'(110명)이 꼽혔고 수돗물(74명), 시중 생수(62명) 순이었다는 것. 상주 상하수도사업소 임정희 연구원은 "정수기를 거친 물의 수온이 약간 더 낮아 1위를 차지한 것 같다. 일반인들은 맛 차이를 거의 못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며 "수돗물을 음용수로 쓰고 있는 상주시청에서도 처음에는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러운 분위기"라고 했다.

◆청정 한국 이미지 담아라

물은 이제 단순히 갈증을 채우는 원초적 기능을 넘어 건강을 위한 고급 음료수로 진화하고 있다. 영국의 트렌드 예측기관인 트렌드워칭닷컴(trendwatching.com)은 지난해 발표한 '2008 소비전망 보고서'에서 "소비자들이 창조적인 가치가 담긴 제품에 지출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스와롭스키 크리스털로 물병을 장식한 'Bling H20', 세상에서 가장 공기가 깨끗하다는 호주 태즈매니아섬의 빗물로 만들었다는 '태즈매니언 레인' 같은 프리미엄 생수가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내 업체들이 저가 경쟁에 따른 낮은 마진에도 우후죽순격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도 당장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렵지만 기상이변이나 환경오염 등으로 먹는물 시장이 미래에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PET병 생수시장 점유율 1위인 제주개발공사 고경수(51) 연구소장은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려는 업체들은 단순한 제품 판매보다 한국의 청정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며 "공중파방송 광고 규제 완화, 재활용 대용량 생수를 판매하는 영세업체에 대한 감독 강화도 국내 생수산업 성장을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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