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책

해방이 되고 처음 나온 교과서는 누런 마분지에 검은 딱지 흰 딱지가 붙어있고, 그곳에는 글씨가 없었다. 글씨 없는 책으로 공부를 했다. 우리나라 출판은 1993년 '책의 해'를 분기점으로 해서 세계 10대 출판대국으로 발전했다.

해방 이후 처음 나온 월간지는 '문화창조' '여성문화' '신태양' 등이었고, 뒤이어 '여원' '아리랑' '사상계' '새벗' 정도였다. '현대문학'은 이 나라 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6·25전쟁 때는 피난민의 덕택으로 대구에선 서점 하루 매상이 돈을 가마니에 담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80년대는 월부 전집이 무진장 팔려나갔고, 90년대는 여성지를 비롯해서 잡지 춘추전국시대를 이루었다. 대박을 맞은 문인과 출판사가 많았다. 문인들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었다. IMF이후 출판은 급속도로 사양길에 접어들어 전국의 출판사와 서점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문인들도 설 자리를 잃었다. 지금은 인터넷, 영상매체 때문에 책은 점점 더 빛을 잃어가고 있다.

한때 대구의 제일 번화가 중앙로에는 서점이 10개나 있었지만 지난해 하나 남은 대우서점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출판사- 인쇄소- 제본소- 창고를 거쳐 서점에 진열 한번 해보지 못하고, 재고도서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책이 월 20만~30만권이나 된다. 서점에 진열이라도 되는 책은 그나마 행복하다. 시중에 진열된 책도 평균 50%가 반품된다. 1년에 9천만권, 금액으로는 1조원이 넘고, 종이값만 1천4백억원이 된다.

잘 팔린 책도 있다. 해리포터는 1초에 15권, 64개 언어로 3억2천5백만권이나 팔렸다, 잘 팔린다고 해서 좋은 책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책의 수난시대는 진시황의 정책을 비난하는 유생 460명을 생매장하고 역사책 외에는 모두 불살라버린 분서갱유(焚書坑儒)였다.

한 권의 책이 인생진로를 바꾸고 역사를 바꾼 일은 허다하다. 오늘의 이스라엘을 지키고 있는 것은 '탈무드'이고, 링컨이 남북전쟁을 일으키고 노예를 해방시킨 것은 '톰아저씨의 오두막집'이다. 좋은 책 한 권은 큰 대학과 맞먹는다. 투우만은 이렇게 말했다. "책이 없다면 역사는 침묵하고 문학과 학문은 벙어리가 되고 과학은 절름발이가 된다."

문인들의 최종목표는 명작을 남기는 것이다. 문단에 들어오자마자 책부터 내는 열정도 있지만, 한 권에 2백에서 5백만원까지 하는 책을 자비로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창작도 물론 어렵지만 주소, 우편번호 찾아서 적고, 봉투 봉함해서 거액의 송료까지 들여 보내주는 고마움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송일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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