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전 9시 10분 MBC 표준FM에선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녀가 또박또박 읽어 내리는 '여성시대' 청취자들의 사연은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눈물을 머금는다. 양희은(56). 청바지와 기타로 상징되는 1970년대 포크송 시대의 스타. 지난 5일 오후 서울 KBS별관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약속 시간을 조금 넘겨서 매니저와 함께 나타났다. "평소엔 이렇게 늦은 적이 없다. 미안하다"고 했다. 암적색의 뿔테 안경을 쓴 그녀는 대한민국의 50대 아주머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시종일관 큰 감정의 변화 없이 담담히 인터뷰에 응했다.
◆좋은 인연만 간직하고 간다
-내년이 '여성시대' 방송 10주년이네요. 팬이 많이 생겼죠? 힘들지는 않나요?
"MBC 라디오가 워낙에 전파 영향력이 큰 것 같아요. 전 사실 라디오를 1971년부터 했어요. 어렸을 때(스무살 때)부터 했던 일이라 저는 라디오를 좋아해요. 편안하기도 하고. 요새 에어컨 때문에 목이 안 좋아요. 목감기 걸릴까봐 아주 노심초사예요. 에어컨을 너무 틀어대니까 걸핏하면 목이 아프고, 특히 라디오 스튜디오는 완전 골병들게 빵빵 트니까, 뼈로 냉기가 들어와요."
-평소에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전 뭐 외식을 안 하고, 도시락 싸가지고 다녀요. 에너지를 내 일 외에 다른 것에 별로 안 뺏기고요. 그리고 일 외에는 웬만하면 그냥 집에 있어요. 진짜 너무 깍쟁이같이 관리를 하는 편이지. 사람들 만나거나 하는 그런 빌미를 안 만들려고 해요. 늦게까지 시내에 있으면 당장 내일 아침방송에서 벌써 더듬거리고, 발음이 희미하고 꼬이고 그러니까요. 금방 드러나요. (이게) 저의 비결이에요. 일 없으면 가차없이 집에 들어간다."
-목소리를 유지하는 비결은 뭔가요?
"발성 연습을 늘 하죠. 젊었을 때야 힘으로 밀어붙이지만 나이가 들면 그렇게 안 되니까 기를 돌리는 거죠. 목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잘 때는 더워도 언제나 목에 뭔가를 두른다든지. 또 독감 예방주사는 누구보다 먼저 맞고. 그게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이크를 쓰는데 그게 나만의 마이크는 아니잖아요. 그걸 통해서 감기가 계속 옮아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셨는데 MBC에서 섭외가 들어왔나요?
"저는 일을 많이 자르는 편이에요. 작은 노력으로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그런 경제원칙 하에 움직여요. 내가 예전에 신세를 졌거나, 그래서 그게 갚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쪽에서 섭외가 오면 출연해요. 그럴 땐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하고요. 저는 받은 만큼 돌려줘요. 나는 연예계에서 독립군이니까 내가 정리정돈하면서 가는 거죠."
-그렇게 자를 수 있게 된 게 투병생활 때문이었다고요?
"많은 사람을 알아둘 필요는 없다는 거죠. 피곤해요.(그의 목소리에서 진짜 피곤함이 느껴졌다.) 아는 사람만 그대로 갖고 가기도 힘든 세상에 오지랖이 넓어서 나한테 더 좋을 것도 없고. 그러면 인생에서 그냥 에너지를 많이 잃고 흐려지니까. 그냥 좋은 인연만 간직하고 가는 거죠."
-투병생활 중 가장 도움이 됐던 사람이 있다면요?(양씨는 자신이 병을 '이겨냈다'기보다 '참아냈다'고 표현한다.)
"도움이 된 건 역시 가족이죠. 가족 이상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았죠. 진짜 물이 턱 밑까지 차 올랐을 때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나한테 손을 내밀어 주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제대로 된 사람 정리가 그때 된 거죠, 확실하게. 한두 사람만 있으면 돼요. 정말 설명이 필요없는 친구."
◆불혹 넘어서야 받아들인 가수의 숙명
-40년 가까운 노래 인생에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요?
"아, 있죠. 많아요. 20대 때에도, 30대 때에도 언제나 벗어나고 싶었어요. '이게 아닌데'라고 항상 생각했어요. 오히려 마흔이 넘으면서부터 노래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우리 땐 사실 가수가 선망의 직업이 아니었잖아요.(그녀는 가세가 기울어져 '돈을 벌기 위해'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가 처음부터 너무 무겁게 다가와서 그 부담이 참….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그녀의 최고 인기곡 '아침이슬'은 그저 자신의 감수성에 와 닿아 불렀지만, 이 곡이 금지곡이 된 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군사정권에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아침이슬'이 가장 인상적이지만 '한계령'도 그런 느낌이 있는데요?
"사람들 마음속에 고여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 줄줄 아는 사람이 좋은 가수이고, 좋은 작곡가인 것 같아요. 사심 없이 사람들 마음속 어떤 공통적인 것을 끄집어 내주면 사람들이 그걸 두고두고 오래 불러주고요. 뭔가 욕심이 있으면 반짝할 땐 하더라도 빨리 사라지죠. 사람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고 돈 들여서 잘 꾸미면 누구든지 '멋있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보면 잘생긴 사람은 따로 있거든요. 그렇게 화장 다 지우고 보면 '기본 골격이 반듯하구나'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노래도 편곡이나 현란한 반주, 춤, 이런 것 말고 혼자서 반주 없이 부를 때 자기 가슴에 와서 닿는 노래들, 그런 노래들이 말하자면 '목욕탕에서 보는 미인' 같은 것일 거예요. 치장 없이 진솔하게 생긴 게 잘생긴 거고. 그런 노래들이 오래 살아남는 것 같아요."
-전국 순회 콘서트를 여는데 제목을 '소풍'이라고 지었네요?
"중장년 여성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한테는 나만의 소풍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을 해요. 꼭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어디를 가기보다 한나절을 덜어내서라도 자기 자신의 기분과 마음을 환기시킬 만한 시간을 갖자는 의미예요. 그렇게 새롭게, 또 즐겁게. 내가 옛날에 꾸었던 꿈이랄까, 어린 날에 기분 좋았던 설렘 같은 것들을 한번 되살려보자는 뜻도 있죠. 최근엔 공연장에 남성팬들이 많이 늘어서 놀라요. 아저씨들이 굉장히 많이 늘었어요. 전에는 여성 관객이 훨씬 많은 편이었는데, 요새 보면 아저씨들이 많아요."
◆가수로서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제껏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나 기억은?
"(한참 생각한 뒤에) 글쎄, 그야 물론 삶이, 의식주가 고단하지 않았던 어린 날이 누구에게나 다 행복한 게 아닐까요? 근데 벌써 어릴 때 결핍이 생기고서부터는…. 그러나 결핍이 굉장히 대단한 에너지이기도 해요. '그것이 내게 없다'라는 것이 굉장히 많은, 남다른 노력과 생활 방식에 어떤 변화 같은 것을 불러오죠."
-자신의 인생이 정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하세요?
"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내가 20대 때 양희은이 좋아했었잖아' 이렇게 과거완료형으로 이야길하지만, 난 가수로서 내가 정점이라고 생각했던 때는 한번도 없었어요. 내 노래가 라디오에서 많이 나올 때도 나는 언제나 고단한 고학생이었기 때문에 생활의 안락함, 이런 거 하고는 거리가 멀었어요. 20대 한창일 때라고 해도 나는 늘 학비 걱정, 생활비 걱정에 시달렸고. 그러니까 정점이란 게 뭘 뜻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의 노래가 TV나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나올 때가 정점일까. 아니면 개인적으로 그 고단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점일까? 나는 그 정점이 아직은 안 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무리를 잘 하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거죠. '뭘 한 듯이 해봐야 끝도 낼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 그만두려고 해도 명분이 없잖아요, 하하."
-'인간 양희은'을 정의하자면?
"그건 내가 못 하죠. 내가 그렇게 나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다면 대단한 사람이게? 나란 인간이 어떤지 내가 어떻게 알아? 비교적 솔직하려고 애써요. 사기 안 치려고 하고."
양희은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기존 인터뷰 기사나 공식 홈페이지(www.yangheeun.co.kr)를 통해서 이미 대부분의 이야기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 인생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본 듯한 상황에서 '새로운 질문'에 대한 압박감이 생겼다. 기자가 이 점을 지적하자 그녀도 "그렇죠? 그러니까 질문이 똑같은 걸 하면 안 되지. 뻔한 이야기가 나오는 질문을 하면 재미가 없죠"라고 답했다. 그렇게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양씨의 솔직담백한 답변이어서인지 재미있었다.
전국순회공연 '소풍'의 대구 공연은 오는 30일 오후 두 차례 대구시민회관에서 열린다. 인터뷰 말미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 개인적으로도 대구는 굉장히 오랜만이에요. 1990년대 대구에서는 공연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근데 요새 대구에서 호응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너무 자주 들러도 신선한 느낌이 없을 수도 있겠죠. 오랜만에 보는 맛도 있어야 좋겠죠? 오랜만에 찾게 되니까 저도 기대가 됩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양희은은?
1952년 서울 출생. 1970년 서울 YMCA가 운영하던 청소년 쉼터 '청개구리'에서 김민기와 동료 노래꾼, 라디오 PD 등과 조우하며 노래의 삶이 시작됐다. 1971년 명동 생맥주집에서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같은 해 1집 '아침이슬'을 발매하자마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라디오 DJ로서도 활동했다. 200여곡 가운데 무려 30여곡이 금지곡이 되는 등 활동에 지장을 받자 1981년 유럽과 미주로 여행을 떠났다. 이듬해 귀국했으나 난소암에 걸렸다. 3개월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았으나 이겨냈다. 1989년에 암이 재발해 다시 한번 힘든 시기를 겪었다. 지난 2001년 데뷔 30주년, 2006년 데뷔 35주년 기념 앨범을 내기도 했다. 1987년 결혼한 남편과 살고 있다. 대표곡으로 '아침이슬' '한계령'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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