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결혼한 김민혜(30)씨는 남편감을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 초기, 그녀는 남편의 고집이 세고 독립적인 성격에 확 끌렸다. 남편은 대학 시절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유쾌하고 리더십이 강하기로 유명했다. 보호본능이 강해 때로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녀를 감싸돌았다. 반면 그녀는 주변으로부터 내성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이었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잘 웃고 농담도 곧잘 하지만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입을 다물기 일쑤였다. 어릴 때부터 늘 새침했고 남들과 쉽게 말을 트지 못했다. 너무 다른 성격이지만 둘은 누구보다 죽이 척척 맞는다고. 김씨는 "남편은 내가 가지지 못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게 매력"이라며 "늘 남편이 나를 채워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녀의 배우자 선택에 자신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이유가 숨어있다. 그녀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그 답이 보인다.
◆부모가 만든 나의 이상형
김씨는 3남매의 막내. 부모는 그녀를 유난히 아꼈다. 그녀의 부모는 여섯살이 되기 전까지 바람불면 날아갈까, 눈·비오면 감기들까 그녀를 애지중지했다. 김씨는 여자아이답게 집안에서 소꿉놀이를 하거나 인형을 가지고 놀아야했고 함부로 말하거나 버릇없는 행동을 하면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부모에게 칭찬받고 싶었던 김씨는 무던히도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고, 활발하고 남 앞에 서기 좋아했던 본래 성격은 무의식 속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억압됐던 김씨의 내면이 이성을 만나 배우자를 고를 때 은연중에 솟아났다. 김씨의 억눌렸던 내면을 가진 남편을 보고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결국 유아기 때 부모의 가르침이 김씨의 이상형을 결정한 셈이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자신 내면의 '자기표상'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것으로 본다. 의식화됐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다른 사람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결국 자기 모습의 일부이다. 특히 자신의 내면에 억압된 그림자를 보여주는 동성에게는 시기와 질투, 분노를 느끼지만 이성으로부터는 선망과 동경, 끌림의 감정을 느낀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특정한 성향을 억압하고, 성장한 후에는 억압했던 성격을 지닌 이성에게 반하게 된다.
정모(38)씨 자매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각자 남편의 외모나 성격이 너무나 다르다. 정씨의 언니는 '꽃미남' 스타일인 남편의 모습에 홀딱 반했다. 장녀로서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렸던 그녀는 자유분방하고 귀여우며 모성본능을 일으키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 반면 늘 언니에게 기대야했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배웠던 정씨는 키가 크고 강하며 무엇이든 혼자 해낼 수 있는 스타일의 남편을 만났다. 정씨는 "나에게는 없는 면을 가진 남편을 만나면서 숨겨진 반쪽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어떤 유형의 이성에 끌리는 걸까
자신의 이상형이 궁금하다면 자신의 성장과정을 돌아보자. 억압됐던 성격에 따라 좋아하는 이성도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맏이는 대개 독립성이나 책임성, 자기 주장이 강하다. 반면 자유롭게 놀거나 무책임하게 방종하고 싶다는 욕구는 억압된다. 결국 성인이 되면 의존적이고 다소 소심한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외모에 신경을 쏟도록 양육된 아이들은 훗날 지적인 스타일의 남성을 좋아하게 된다. 이에 비해 똑똑하고 외모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모범생' 스타일은 오히려 섹시하고 육감적인 이성에 끌린다. 결혼 5년차인 택시기사 박모(42)씨도 정반대의 아내를 만났다. 박씨는 장남으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이다. 경상도 남자답게 감정 표현에 무디고 책임감이 강하다. 그러나 박씨의 아내는 하고 싶은 말은 다해야 하고 주체적인 성향이 강한 성격. 박씨는 "아내의 그런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결혼을 밀어붙였다"며 "가끔은 지나치게 놀기 좋아하고 무책임한 아내가 미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스타일도 달라진다. 감춰진 자신의 성격을 보여주는 연예인을 선호하는 탓이다. 자기주장이 약하고 소심한 여성들은 독립적이고 단호한 해리슨 포드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대범하고 고집이 센 여성들은 상처가 많고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제임스 딘 같은 스타일을 선호한다.
◆지나치면 독
하지만 '결혼의 이유'가 곧 '이혼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심하게 한쪽 특성만 장려하고 다른 면을 무시하면 성인이 된 후에 병리적으로 잃어버린 면을 찾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가 수용하기 힘든 내적인 특성을 지나치게 배우자에게 강요하게 되고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직장인 정모(45)씨는 집안의 모든 대소사는 물론, 가계부까지 직접 정리한다고 했다. 아내가 너무 의존적으로 무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정씨는 "결혼 초 아내의 미숙한 일처리가 성에 차지 않아 하나씩 떠맡기 시작했다"며 "이제 아내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털어놨다.
유아기 때 부모의 관계가 충격적이거나 비정상적으로 끝나는 상황을 목격하면, 성인이 돼 결혼한 후에 같은 일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이혼 파문을 겪었던 톱스타 A씨도 그런 경우다. 어린 시절 A씨의 아버지는 가정을 버리고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렸다. A씨에게 아버지는 '나를 버리는 사람'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강한 분노감을 갖고 있었다. A씨는 아버지와 달리 나이가 어리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으며 떠나지 않을 사람을 찾아 5세 연하의 남편과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이 술을 마시거나 귀가가 늦을 때면 A씨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남편을 닥달했고, 외도를 의심해 사설 탐정까지 고용할 정도였다. 지속적으로 추궁당하며 내몰렸던 A씨의 남편은 정말 외도를 했고,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났다.
주부 이모(45)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던 이씨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고, 부드럽고 자상한 남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사태로 남편이 일방적으로 해고되면서 고통이 찾아왔다. 답답한 마음에 남편이 못먹는 술을 마시고 들어오자 '무조건 방으로 들어가라'며 등을 떼밀며 과잉 반응했던 것. 남편의 모습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폭력의 기억이 겹친 탓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짜증이 난 남편은 숟가락을 집어던졌고, 신경질적이던 이씨는 갑자기 꿇어앉아 빌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남편은 속에 찬 울분을 아내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건을 던지다가 슬쩍 건드리거나 때리기 시작했고 심각한 가정 폭력으로 확대됐다. 결국 이씨는 비폭력적이었던 남편이 폭력적으로 변하도록 유도한 꼴이 됐다.
장문선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너무 좋거나 싫은 이면에는 무의식적이며 비이성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상대에게 너무 끌릴 때는 한 박자 늦춰서 자신의 내면을 곰곰이 돌이켜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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