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보면 악인이 더 멋있을 때가 많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는 식인의 비인간성마저 무색하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다. '레드 드래곤' '양들의 침묵'의 연작이 '한니발'과 '한니발 라이징'으로 진화한 것도 그의 매력 때문이다.
가장 진저리쳐지는 것이 사악한 것이다. 간사한 마음을 위장하고, 뒤에서 돌변하는 악인이다. 그러나 한니발은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을 관조하고 성찰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의 식탁에 오르는 인간들은 대부분 선하지 않다. 한마디로 '씹어도 시원찮을 인물'들이다.
'한니발 라이징'을 통해 그가 2차대전 중 패잔병들에 의해 강제로 어린 여동생을 식인하게 되는 가혹한 운명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인간적으로 끌리게 된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나, '더 록'에서 희생된 부하들을 위해 분연히 반역을 일으킨 험멜 장군(애드 해리스), '콘 에어'의 사이러스(존 발코비치)도 그런 매력적인 악인에 속한다.
'배트맨'의 조커는 희대의 악인이다.
그는 악을 유희하는 인물이다. 돈도 권력도, 사랑도 초월한 채 악을 놀이처럼 이용하는 악동이다. 고담시를 지킬 압박감도, 도덕을 지킬 억압도 없다. 규칙도 없이, 이성도 없이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
사실 선과 악의 윤리적 기준은 시기적으로 동심과 교체된다. 그래서 악인 조커에 대한 끌림은 자신의 동심을 울리는 장난기일지도 모른다.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스파이더맨 3'의 악당 베놈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기획중이라고 한다. 베놈은 스파이더맨을 숙주로 이용해 블랙 스파이더맨이 되게 만드는 악당이다. 조커와 같은 기괴한 장난기나, 한니발과 같은 현학적 인물도 아니다. '기생충과 같은 캐릭터'라는 표현대로 혐오감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제작·배급사인 소니는 노쇠현상을 보이는 스파이더맨을 걷어내고, 베놈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의 시나리오를 작가에게 맡겼다. 2011년 개봉 예정이다.
시리즈의 오락성을 유지하려는 궁여지책일지 모르지만, 악인을 주인공으로 배치하려는 시도는 색다르다. 악인에 대한 관객의 우호적인 시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악인에 마음이 끌릴까.
우선 드라마적으로 보면 악인의 캐릭터는 완벽한 형태다. 고민하거나 불안에 흔들리지 않고 일로매진한다. 대부분 나쁜 쪽이지만 대의를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또 하나는 관객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다. 누구나 악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다만 선한 감정이 강해 표출되지 않을 뿐이다. 관객은 찔리는 양심을 악인을 통해 어루만지는 진정효과를 느낀다.
그래도 가장 큰 것은 변하지 않는 믿음 아닐까.
시류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늘 그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켜준다는 것, 그것이 비록 악인일지라도 미덕으로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현실의 불안을 잠재워줄 수 있는 초월인을 기다리는 현대인의 간절함이기도 하다.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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