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민족 다문화 사회](⑤끝)문제투성이 국제결혼중개업

맞선 하루만에 결혼까지 '뚝딱'

▲베트남 호찌민에서 한국 총각들이 베트남 여성들과 합동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한국 총각들이 베트남 여성들과 합동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국제결혼에서 스피드(speed)는 곧 돈으로 통한다. 원정 결혼길에 오른 늦깎이 총각들이 현지 맞선부터 결혼을 하기까지 채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 서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은 고작 몇십 분. 졸속 결혼은 상대를 속이고 그 거짓 정보가 결국 다문화 가정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결혼중개업체의 상혼과 늦깎이 총각들의 조급한 마음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결혼…

지난달 3일 베트남 하노이의 국제결혼중개업체인 L상사의 베트남 지사. 한국인과 결혼하길 원하는 베트남 여성들이 쉴새없이 드나들었다. 서너명씩 함께 온 베트남 처녀들이 연방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수줍은 모습으로 직원들과 상담을 했다.

L상사는 베트남여성인민위원회와 협약을 맺어 국제결혼을 알선해 주는 하노이 유일의 합법 업체다. 맞선을 보기 전에 배우자 사진과 프로필이 담긴 정보를 교환하고 현지에서 맞선을 본 후 10일 동안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전문통역사도 붙여준다. 이런 곳만 있다면 누구나 안심하고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 국제결혼업체들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졸속으로 결혼 일정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늦깎이 총각들이 출국과 결혼, 귀국에 이르기까지 4박5일이 걸리는 게 보통이다. 한 관계자는 "이 기간에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함께 갖춰야 하기 때문에 맞선 본 그날에 당장 결혼식까지 치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부 중개업체들은 일정을 더 당기기 위해 아예 베트남 여성들이 항상 대기할 수 있는 기숙사까지 운영하고 있다. 국제결혼알선 자체가 불법인데도 베트남 당국의 눈을 피해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다.

업체들은 결혼 성사에만 급급해 한국 남성에 대한 거짓정보를 베트남 여성에게 알려줘 건강한 다문화가정의 첫단추부터 잘못 끼우게 해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경우가 잦다.

◆막가파식 국제결혼

경북의 결혼이주여성 A씨(26)는 3년 전 베트남 호찌민에서 현재의 남편과 맞선을 봤다. 남편이 말이 없고 조용하기에 착한 사람으로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결혼후 1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남편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 7개월 된 아들을 둔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A씨는 "미리 이 사실을 알았다면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상당수 결혼이주여성들은 맞선 때 결혼중개업체로부터 받은 남편에 대한 정보와 실제 한국에서 알게된 사실은 천양지차(天壤之差)라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실태조사'를 해보니 그중 31%는 결혼전 배우자의 정보가 사실과 달랐다고 응답했다. 그중 가장 많이 다른 것은 배우자의 재산, 성격, 소득 순이었다. 결혼중개업체들은 거짓 정보를 주더라도 '결혼만 시키면 돈이 된다'는 영업방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들은 한국 남편들이 내놓은 결혼 지참금을 떼먹기 일쑤다.

취재진이 베트남, 태국의 결혼이주여성 친정집 18곳을 방문해 보니 대부분 '지참금을 받지 않았다'며 그런 것이 있는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난 남편들 대부분은 몇백만원의 결혼지참금을 업체에 건넸다고 말했다.

경남 통영으로 시집온 한 결혼이주여성은 "결혼식 후 남편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식장에서 받은 패물을 브로커에게 모두 빼앗겼다"며 "한국말이 서툴러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고 말을 조금 배운 뒤에는 이미 브로커와 연락이 끈긴 상태였다"고 말했다. 결혼 브로커들이 '무조건 결혼만 하고 보자'는 한국 남성들의 심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신매매성 국제결혼?

'초·재혼 상관없음, 나이 상관없음, 장애인 가능, 후불제, 염가제공, 도망가면 책임짐, 베트남 숫처녀….'

국제결혼업체들이 내건 광고 현수막은 노골적이다 못해 특정국가의 여성을 상품화하는 내용을 버젓이 담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무성이 발행한 '2007년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베트남 신부,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을 표제로 걸고 한국에서 행해지는 국제결혼의 인신매매성을 고발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지자체가 나서서 이같은 현상을 부추겨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한 지자체는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알리면서 "베트남 여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순결한 처녀입니다" "베트남 여성은 몸매가 환상적입니다"라는 홍보물을 주민들에게 돌려 말썽을 빚기도 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상업화된 국제결혼중개업에 의한 한국 남성과 제3세계 여성간의 결혼은 이들 여성을 상품화하고 매매혼적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제결혼중개업에 대해 현재의 어정쩡한 법률적 규제만으로는 해결할수 없고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된 결혼중개업체 양성과 관리 등이 필요하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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