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야 놀자] 투표의 역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를 할 경우 '식당 정하기'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식당에 대한 선호가 다양할수록 의견을 수렴해서 식당을 정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다수결로 식당을 정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오른쪽 표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갑, 을, 병은 다수결을 통해 결정하려고 한다. 이들의 선호순위는 다음 표와 같고, 메뉴선택에 따라 식당이 결정된다.

세 가지 메뉴를 동시에 투표에 부치면 모든 메뉴가 한 표씩 선택되므로 어떤 메뉴도 과반수 이상의 선택을 받지 못해 메뉴를 정할 수 없다. 차선책으로 메뉴를 두 개씩 정해서 투표에 부쳐보자. 우선 자장면과 비빔밥을 놓고 투표를 하면 자장면이 선택된다.

(갑은 1순위가 자장면, 을은 1순위가 비빔밥, 병은 1순위가 스파게티지만 후보에 없으므로 2순위인 자장면은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자장면 2표, 비빔밥 1표로 자장면이 선택된다)

그러나 과반수 이상으로 선택된 메뉴인 자장면은 구성원들에게 스파게티보다 덜 선호되는 메뉴이다. (갑만 스파게티보다 자장면을 좋아하고 을과 병은 자장면보다 스파게티를 더 선호한다) 나머지 메뉴의 선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어떤 메뉴가 선택되든 그 메뉴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표결에 부쳐지지 않은 메뉴보다 덜 선호되는 메뉴가 된다.

또 두 개씩 투표에 부치게 되면 결국 메뉴가 한 번씩 선택되므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투표의 순환이 계속된다. 더 큰 문제는 투표에 부치는 순서가 매우 중요해지며 이는 원하는 메뉴가 채택되도록 조작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비빔밥이 선택되게 하려면 자장면과 스파게티를 먼저 투표에 부치고 그 결과로 나온 스파게티와 비빔밥을 부치면 비빔밥이 선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표에서 갑, 을, 병을 유권자라고 하고 자장면, 비빔밥, 스파게티를 선거 후보자라고 가정한다면, 이는 정치에 관한 다수결 투표의 원리가 우리의 생각만큼 합리적이며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위의 예는 공공선택이론으로서 투표에 관해 면밀하게 탐구한 애로우(Kenneth Joseph Arrow)의 불가능성 정리를 담고 있다. 애로우는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다수결에 대한 어렴풋한 환상을 논리적으로 깨뜨려 버린 '대가'로 197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집단의 의사결정은 어떤 방법을 따르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합리적 공리를 만족시키면서 민주적인 공리까지 만족시킬 수는 없다. 게다가 투표절차를 조작함으로써 투표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불완전한 의사결정방식이다. 우리는 보통 투표를 합의에 도달하는 매우 민주적인 절차로 여겨진다. 그러나 투표는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라 단순한 절차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혹자는 이 이론을 '자본주의 경제학이 민주주의에 내린 사망선고였다'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는 선거가 끝나는 시점에서 많이 논의된다. 투표 전 국민들의 잠정적 선호와 투표 후 나타난 선거 결과가 다를 때 국민들을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론의 한계는 애로우가 제시한 공리들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실현되기 힘든 너무 강한 전제라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이론은 민주적인 집단의사결정이 항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보다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결과가 투표 규칙 자체와 민주주의에 대해 깊은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하더라도 선거 제도가 최선의 방책임은 틀림없다.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계산으로 한계에 대해 실망하기보다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디딤돌로 생각하자.

박경원(대구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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