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하나의 세계는 중화주의 세계?

베이징올림픽이 시작되자 온 국민은 물론 세계가 자연스럽게 중국 베이징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개막식이 열리는 8일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국회가 70일 넘게 원구성도 하지 못한 채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어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 대통령 부인의 사촌언니가 공천장사를 하고 여권핵심인사들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이 잇따라 터져도 국민들은 박태환 선수와 최민호 선수 등 우리나라 선수들이 따내는 금메달에 환호성을 올리느라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긴 울화통 터지는 정치인들만 바라보다가 혼신의 힘을 다해 금메달을 따내는 우리 선수들이 백배 천배 더 낫다.

그래서 올림픽은 정치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올림픽을 개최한 중국 역시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는 마찬가지다. 분리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시짱(티베트)과 신장지역은 계엄령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테러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고 올림픽의 주무대인 베이징에서 미국인 관광객들이 백주대낮에 중국인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베이징시내는 물론이고 전세계가 동요하지 않고 박수만 짝짝~~ 치고 있다.

중국은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구호로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同一個世界, 同一個夢)을 내세웠다.인종과 민족과 대륙을 넘어 세계는 하나라는 올림픽의 위대한 정신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러나 지난 8일 오후 8시부터 거행된 개막식을 보면서 중국의 야심 찬 중화주의와 오만을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았다. 개혁개방 이후 30여년 만에 세계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중국은 2시간에 걸친 식전행사를 통해 그들이 이룩한 중화문명의 위대함을 무대위에 올렸다. 필자도 처음에는 황허(黃河)문명에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파악하고는 겁이 났다.

그것은 제국주의적 강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의 거대한 야심을 드러낸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은 90여개국 정상들이 개막식 참석을 위해 베이징에 도착하는 모습을 그 옛날 천자에게 조공을 바치러 오는 외국 사신들의 행렬을 연상케 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외국 정상과 연쇄 정상회담을 가진 후진타오 주석은 10~20분 동안의 시간만 할애하면서 생색을 냈고 개막식에 참석한 외국 정상들은 냉방이 안 되는 일반석에 앉은 반면 중국 공산당의 원로와 주요 간부들은 널찍한 VIP석에 앉는 사태도 벌어졌다. 중국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이 같은 중국당국의 '외교결례'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림픽을 통해 중화주의를 선포하고 세계 정상들을 들러리로 세운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베이징올림픽을 뒤집어보자.

베이징당국은 안전을 이유로 베이징 호적(戶口)이 없는 외지인들을 추방했다. 100만명이 넘는 농민공들은 시내에서 벌어지던 각종 건설공사가 올림픽을 앞두고 일시에 중단되자 일자리가 없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변두리의 무허가 집들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헐렸다. 올림픽이 끝나면 중국경제의 거품도 걷힐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올림픽의 정치화는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그 도가 지나치다. 이제 우리 선수단이 금메달을 땄다고 박수만 칠 것이 아니라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하고 있고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꿰뚫어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서명수 정치부차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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