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시인에게 온 편지/이기인

청송교도소에서 편지 한통이 날아왔다

밥풀냄새가 난다 그쪽도 내 독자다

지금은 봄이군요 그리고 아무 말이 없다

새순이 돋아서 좋다 꽃이 피어서 좋다

그쪽도 어쩌다 내 쪽으로 가지를 뻗어서 좋다

검열한 편지지 속에서 삐뚤삐뚤 피어난 꽃

볼펜 한자루에서 피어났다

오늘은 저녁 쌀 씻다 한줌 쌀을 더 씻다

편지가 귀한 시대가 됐다. 밥풀로 봉한 편지를 받는 일은 더욱 귀한 시대가 됐다. 요구르트에 밥풀 넣어 술을 빚어 먹는다는 교도소. 부족한 게 많은 곳이라서 그런가, 편지에 적힌 사연도 여백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침묵보다 더 큰 말씀이 어디 있겠는가.

행을 한 연으로 처리하여 여백을 둔 시의 어법도 침묵을 닮았다. 그 빈자리에는 돋는 새순과 피는 봄꽃. 꽃을 매단 가지가 내 쪽으로 뻗었으니 그 마음을 뜨겁게 받아 안는다. 많이 배우지 못해 글씨는 삐뚤삐뚤 엉성하지만 담긴 마음은 누구보다 진실하다. 그러니 저녁 쌀 씻다 한줌 쌀을 더 씻을 수밖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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