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희망 본색, 실패 예찬…

희망이 있어 좋은 세상이다. 우리네 삶이라는 게 늘 수월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가만히 따져 보면 걱정과 어려움이 훨씬 더 많은 게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그럼에도 그런 팍팍한 일상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내는 것은 아마도 우리네 세상에 희망이라는 묘약이 아직 끊임없이 키워지고 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결코 돈이나 명예, 권력 따위가 아니라 바로 작디작은 한줄기 희망이다.

장애아의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자폐와 같은 정서장애의 경우 그 어려움이란 정녕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오죽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스스로 죽음을 생각할 정도라 하겠는가.

보통 희망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늘 성공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는 것을 상식처럼 여긴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곧 다다를 것처럼 아주 쉽게 멋진 성공사례를 이야기하고 희망을 가지라 한다. 하긴 이처럼 극적이고 화려하고 달콤한 예가 어디 또 있겠는가. 고난 속에 있는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확실한 위안이 곧 이런 성공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는 희망이란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여 보자. 극적인 성공사례 속에만 희망이 있다고 하면 이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장애를 극복한 극적인 성공사례들이 실화로 픽션으로 가끔 우리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더욱 첨단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대중매체가 발달한 요즘 이러한 사례들은 순식간에 세상에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포장되어 선풍적인 관심과 인기를 이끌어 낸다. 이에 상업주의의 부추김까지 가세를 하면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큼 그 반향은 엄청나다. 책으로 영화로 음반으로 대중 상품이 되어 엄청나게 팔려 나간다. 그리하여 모든 자폐장애자들은 모두가 그 성공사례의 주인공처럼 다소 엉뚱하지만 낭만적이고 어느 한 특정 분야에 서번트를 가진 천재이며 그러한 특성을 통해 극적인 성공을 이끌어 내는 멋진 존재로 각인시켜 버린다. 이는 곧 일반 대중들에게 상식이 되어 장애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오직 성공사례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만든다. 결국 희망은 기적적 성공사례 속에만 존재하는 신기루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성공사례만 강조되어 일반적인 상식처럼 도식화되어 버린 희망은 오히려 숨막히는 절망일 뿐이다. 기적적인 성공에 이르지 못한 수많은 가정들은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서 그저 신기루만을 바라봐야 하는 너무나 비참한 상황으로 내던져지기 때문이다.

첨단 의학으로도 아직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적게는 1천 명당 한 명, 많게는 400명당 한 명꼴로 자폐성의 정서장애를 가진 아기들이 태어난다고 한다. 이 통계를 바탕으로 추산하여 보면 우리 사회 속에는 적어도 4만에서 많게는 10만에 이르는 정서장애자들이 있고 그들을 끌어안고 있는 가정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 중 네댓 정도에 불과한 성공사례를 뺀 나머지 수만 가정은 아직도 상대적 실패사례 속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가 드라마틱한 성공사례에 눈길을 빼앗기고 있는 동안 이 평범한 가정들은 우리의 무관심의 그늘에서 처절한 절망의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이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이들에게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이 극적인 장애극복의 성공사례를 이루어낼 때까지 무언의 강요 속에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우리가 먼저 다가가 그들 존재 자체를 환호하고 예찬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희망이란 우리네 일상 속에서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희망이다. 그렇게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나 차별이 없는 세상…. 매순간 끊임없이 크고 작은 좌절과 실패들을 수없이 겪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볼품없어 보이는 평범한 일상이 예찬을 받는 세상이라야 우리네 세상에는 희망이 자란다. 실패를 예찬할 일이다. 처절한 실패일수록 더욱 큰 환호와 갈채를 보낼 일이다. 하긴 이것이 어찌 장애가정의 문제뿐이겠는가.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두루 다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실패 예찬…. 이것이 희망의 본색이다.

이상만(돋움공동체 대표·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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