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들이 가끔 하던 말에 '꽝(깡)철이'라는 게 있었다. "이 꽝철이 같은 놈" "저 꽝철이를 어째야 좋겠노"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지목되는 대표적인 대상은 집에 끊임없이 걱정을 몰고 오는 아주 못난 자식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허술하면서도 정감 가게 행동하는 아랫사람 또한 그렇게 불렸다. 역설로도 구사될 만큼 오랜 세월 우리네 삶과 함께해 온 상상 속 생물체가 꽝철이였다.
하지만 그 이름이 정작 자주 등장하는 것은 역시 가뭄 때였다. 논밭과 함께 농부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갈 즈음, 밤 시간 마을 넓은 마당에 모여 함께 더위를 식히던 어르신들은 으레 꽝철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놈이 마을 인근에 날아와 앉음으로써 가뭄이 찾아들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그걸 내쫓아야 비가 온다며 꽹과리를 들고 나서고, 할머니들은 또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축출 방법을 구사한다며 연대감을 과시하곤 했었다.
그럴 때 어른들은 꽝철이가 온몸이 환한 불덩이로 돼 있고 꼬리 부분은 공작새의 날개같이 활짝 펴진 빗자루 모양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물 때마다 아이들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생물체를 찾아내려 용쓰곤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민속학 쪽 자료에 보니 꽝철이는 과연 움직이면 불처럼 뜨거운 가스가 몸에서 발산돼 구름이 증발되고 땅이 메마르게 되는 불의 신(火神)이라고 설명돼 있다. 구름과 비를 몰고 다니는 물의 신(水神) 용과는 반대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자료는 용이 되려다 실패한 구렁이인 '이무기'를 가리키는 경상도식 이름이 꽝철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어떤 이는 용과 꽝철이는 출생부터가 다르다고 이견을 보이는 바, 용은 陽物(양물)인 잉어가 오래 묵어 되는 것인 반면 꽝철이는 陰物(음물)인 지네'뱀 등이 화한 요괴라는 것이다.
이제 민속학 서적 속에나 살고 있으려나 했던 꽝철이가 근래 인터넷 시대의 신세대들 입을 통해 되살아났다고 한다. 대구 일대가 올 여름 하도 덥고 그게 주로 가뭄 탓이라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어쩌면 정권 교체 후 여러 가지로 어수선해지면서, 목 타는 게 자연뿐만 아니게 된 데도 원인이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팔공산 꼭대기로 꽹과리라도 두드리러 가야 할까 보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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