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한두 개쯤은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그 충격이 살을 뚫고 들어와 고스란히 몸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지울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 함께 숨을 쉬며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이제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바위덩이처럼 몸 안 깊은 곳에 들어앉아 묵직한 통증으로 나를 옥죄던 그 단단한 껍질을 깨고, 덧나 곪고 썩은 회한의 상처들을 죄다 끄집어내어 망각의 강물로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절절한 서문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한 남자가 있다. 젊은 날 주식투자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언론인으로 세계적 특종을 거머쥔, 탄탄대로를 걷던 남자다. 어느 날 장인의 죽음으로 시작된 비극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장모가 조카에게 살해당하는 참변을 겪고, 그 충격으로 아내는 가정을 소홀히 하고 자신도 집안에 무관심하던 사이 일곱 살의 어린아들을 화재로 잃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불행으로 결국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내와도 사별한다. 비극과 불행의 연속, 그는 그토록 증오하던 기독교에 귀의하는 아이러니까지 겪는다.
그가 바로 김수연(62) 목사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충주MBC, 동아일보, KBS 기자를 거쳐 현재는 한길교회의 담임목사이며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의 산문집이다. 흡사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그의 파란만장한 라이프 스토리를 따뜻한 삶의 시선으로 담고 있다. 작은 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만난 감동적인 사연들과 그를 옥죄고 있는 젊은 날의 고뇌와 상처까지 드러낸다.
'그 사이 욕실에도 연기가 꾸역꾸역 차올랐다. 그 질식할 것 같은 연기를 피해 자기 키보다 더 높은 난간을 넘어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현준아, 현준아, 미안하다. 제발 눈을 떠다오… .'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순간을 그는 통곡하며 적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빠가 책은 얼마든지 사줄게." "정말이죠? 와, 신난다" 그의 말은 영영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 태어나 산 시간이 고작 2천270일에 불과한 그 아이를 위해 그는 20년 넘는 세월 동안 그 약속을 잊지 않았다.
바로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일이었다. 현실의 모든 성공을 내려놓고, 적지 않은 사재를 털어 문화 소외 지역의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해 책 나누기 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전국에 건립된 작은 도서관은 모두 129곳, 함께 나눈 도서의 수는 수십만 권에 이른다.
'세상을 향해 책 한 권을 나누는 것. 그것은 하늘로 떠나보낸 내 아이와의 굳은 약속이다.'
불행을 통해 '나눔과 위로'라는 위대한 긍정을 발견하고, 이를 '꿈과 희망'으로 엮어낸 한 남자의 삶은 땅에 떨어져 결국 바다에 닿은 꽃잎처럼 향기롭다.
시인 서영은은 '생의 마술사, 시련과 고난의 고비 고비에서, 오히려 더 당하고 더 내어줌으로써 불행을 축복으로 바꾼 사람. 김수연, 그의 이름은 더 이상 명사가 아니다. 나누다, 사랑하다를 사는 불꽃 같은 동사이다'라고 추천사에 적었다. 254쪽. 9천800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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