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집단 수용 생활을 해본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수용소 생활을 실감나게 다룬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같은 소설을 볼 때면 왠지 기분이 묘해진다. 그때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되는 것이다.
보통사람에게 있어 수용소의 추억은 그리 각별하거나 드라마틱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아주 말초적이고 반복적이다. 자고 싶고, 먹고 싶고, 숨고 싶고, 그런 막연한 나날들의 반복. 수용소의 생활은 '쇼생크 탈출'에서처럼 간수 몰래 아리아를 틀어놓는 낭만적 객기를 부릴 수 있는 곳도 아니고, '프리즌 브레이크'에서처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곳도 아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수용소의 '단 하루'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영리하다. 수용소에서는 누구나 주인공 '슈호프'처럼 그렇게 십 년을 그 '하루'같이 반복해서 보낼 뿐인 것이다.
이젠 살았구나! 솜옷 속에 다시 발을 쑤셔 넣는다. 담요를 덮고 그 위에 작업복을 덮는다. 이젠 이대로 잠들 수 있다! …… 소시지를 한 조각 입에 던져 넣는다. 어금니로 지그시 눌러 본다. 향긋한 고기냄새! …… 슈호프는 더없이 만족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 동안 그에게는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재수가 썩 좋은 하루였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솔제니친 지음/이영의 옮김/민음사/6000원
게오르규의 『25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과 수용소의 관계를 영리하게 탐구한다. 주인공 루마니아인 '요한 모리츠'는 13년 동안 무려 4군데의 수용소를 들락거린다. 1938년에는 유태인 수용소, 1940년에는 헝가리의 루마니아인 수용소, 1941년에는 독일의 헝가리인 수용소, 1945년에는 미국인 수용소에 있었던 것이다. 석방되어 부인, 자식과 상봉한 그는 18시간 만에 또다시 다섯 번째 수용소에 끌려간다. 게오르규에 의하면 인간은 수용소를 벗어날 수 없다.
명령을 받았지만 도무지 웃어지지가 않았다. 절망에 싸여 몸부림을 치며 울고만 싶었다. 이젠 더 멀리 갈 수가 없었다. 「웃어!」 장교는 요한 모리츠를 쳐다보며 명령했다. 「웃어! 웃어! 웃는 그대로 있어!……」『25시』 게오르규 지음/이선혜 옮김/효리원/9800원
수용 생활에서 무엇보다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은 웃기 싫은데도 웃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전역만 하면 이제 웃고 싶을 때만 웃을 수 있겠지 하는 순진한 희망도 있었더랬다. 웬걸, 군대를 헤쳐 나오니 취업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어찌어찌 영업사원이나 동네학원 강사 따위가 되고나면 또다시 우리는 억지로 웃어야 한다. 그것만은 제발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어있다. 우리의 삶은 그리 각별하거나 드라마틱한 것이 아니다. 자고 싶고, 먹고 싶고, 숨고 싶고, 그런 막연한 나날들의 반복. 히틀러도 스탈린도 솔제니친도 죽었는데, 우리는 이상하게 여전히 어떤 수용소에 산다.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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