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갈데없는 왜구 후예

남의 영토 침탈 더러운 피 유전/독도 도발 한반도 야욕 전초전

얼마 전 개성을 다녀왔다. 단지 6시간 머문 여행길이었다. 번개 같은 북한관광에는 자정 무렵 동대구역을 떠났다 되돌아오기까지 24시간을 소요했다. 돌아오는 내내 생전 처음 북쪽 땅을 밟은 감흥보다 머리 가득 욕이 들끓었다. 눈에 비친 개성의 몰골이 40년 전 남루한 행색이라는 서글픔 때문이 아니었다. 공연히 허세 떠는, 인민들의 슬픈 자존심 때문만도 아니었다. 군사분계선에 멈춰서 하염없이 입북 승인을 기다리는 피곤함, 병영을 드나드는 것 같은 출입 절차, '하지 마라' 일변도의 관광수칙도 구태여 못 참을 것 없었다.

귀가 길의 치미는 욕은 일본을 향한 분원이었다. 100년 전 일본이 짓밟지 않았다면 하는 해묵은 분노와 원망인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의 무도한 병탄이 없었다면 열강이 끼어들고 이 땅이 동강나는 분단의 소지 자체가 없었을 터이고, 아름다운 금강산에 철망을 둘러 선량한 관광객을 쏘아대는 총질도 없을 것이다. 김 씨 부자의 세습적 망상을 받드느라 2천만 인민이 죽어나고, 핵을 협박 삼아 국제사회에 구걸하는 행패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뒤떨어진 이념 대립에 갇혀 세상을 거꾸로 살지도 않을 것이다. 따져볼 것 없이 한반도가 앓는 모든 고통은 그 뿌리가 일본에 닿아 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이면서 잊고 사는 사실이다.

이웃 간에도 울타리를 넘보면 온전한 취급을 받지 못한다. 정신이 돌았거나 도둑놈 심보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하물며 멀쩡한 남의 영토를 먹으려 든다면 이건 나라가 아니고 구도집단이다. 왜구를 지칭할 때의 그 寇盜(구도)다. 일본은 샅샅이 뒤져내 '도해면허'(1618년), '은주시청합기'(1667년), 내각의 영토 결정(1905년) 따위를 독도가 자기 땅인 근거라고 들이대는 모양인데 말 같잖은 억지 춘향이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는 1천500년 전부터 독도를 지배해온 기록에 치일 정도다. 어쩌다 이렇게 돼먹지 못한 이웃을 두었는지 지지리 재수 없다.

일본은 필시 침략 유전자 같은 걸 갖고 있는 것 같다. 삼국시대부터 괴롭힌 왜구의 더러운 피가 대를 이어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골머리를 앓고 신라 문무왕이 왜구를 막겠다며 감포 앞바다에 묘를 쓴 것을 보면 한시도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고려 끝 무렵인 우왕 14년 동안 왜구 침입이 378차례라 하면 보름에 한 번꼴이다. 눈만 뜨면 당한 약탈 방화 파괴 살인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500년 왕조가 무너진 것만 봐도 짐작하고 남는다. 공식 침략 기록만 그 정도이니 아무리 강성한 나라라도 혼이 빠지지 않을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태조 이성계 또한 조선을 세우고도 '나라의 근심이 왜구만한 것이 없다' 했고, 태종은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이라고 몸서리를 쳤다. 임진왜란 7년, 일제 강점 36년은 그런 왜구를 조상으로 둔 후예들이 자행한 야만의 세월이었다. 일본이 이제 와 제아무리 부인 축소 은폐 미화 정당화해도 뒤집힐 역사가 아니다. 국민을 거짓교육하고 의식화한다고 법석 떠는 것은 자기들끼리 거는 집단최면일 따름이다.

이런 불량한 나라에 전쟁범죄를 솔직하게 자백하는 독일 같은 양심을 기대하기는 글렀다. 독일정부는 나치피해보상법으로도 모자라 최근에는 전쟁 덕을 본 기업들과 함께 6조 원 규모의 재단을 만들어 2차 대전 때 강제노역을 당했다고 신고한 50여 나라 167만 명에게 응분의 보상을 했다. 3년 전에는 베를린 시내 중심에 나치가 학살한 600만 유대인을 기리는 거대한 추모비가 섰다. 축구장 3개 면적에 콘크리트 관 2천711개를 얽어 놓은 추모비는, 시민운동이 앞장서 세운 통절한 자기반성이다. 종군위안부마저 오리발 내미는 일본과는 딴판인 품격을 독일에서 보는 것이다. 하기야 왜구조차 고려인이 주축이라고 뻗대는 사람들에게 무슨 품격을 말할 것인가.

그러고 보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주기적으로 발작했다. 대략 300년, 400년 주기로 덮쳤다. 그렇다면 독도를 집적대는 것은 또 한 번의 침략을 위한 오픈게임인가. 요즘 일본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또다시 300년 뒤를 준비하는 것 같아 찝찝하다.

김성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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