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명] 삭막한 도시를 화려하게

교량'건축물'공원'분수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밤에 빛을 입히는 경관조명 분야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경관조명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지만 피사체의 매력을 살리고 재확인시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천만불짜리 야경으로 일컬어지는 일본 고베의 밤은 이런 '경관조명'의 존재 이유를 새삼 깨닫게 한다.

1995년 고베는 진도 7.3의 대지진에 처참히 무너졌다. 사망자만 6천400여명. 밤이 찾아오면 칠흑 같은 어둠이 도시를 덮었고,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군데군데 솟아난 한두줄기 작은 빛들이 재난 속에 희망을 가져다주었고, 그것은 바로 누군가 켜 놓은 촛불과 랜턴 빛이었다.

지진 후 복구작업을 시작한 고베시는 빛이 가진 이런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도시의 경관조명에 표현하려 애썼고, 결국 천만불짜리 야경을 탄생시켰다. 고베의 사례에서 보듯 도시의 경관조명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다. 김우진 대구도시디자인(조명) 자문위원은 "밝고 아름다운 빛은 도시를 살아 숨 쉬게 하고, 사회 모든 계층에 희망을 불어 넣는 존재"라며 "대구의 밤이 달라져야 하고 달라지고 있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고 했다.

◇분수

"야! 끝내주네." 6일 오후 8시 30분 대구 수성구 수성못. 산책 나온 시민들이 하나 둘 못 난간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5월부터 시작해 매일 밤 못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음악분수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때론 장중하고 때론 경쾌한 음악에 맞춰 마치 생명을 가진 듯 춤추는 물줄기에 연방 탄성이 터진다. 음악 분수를 감상하는 시민은 평균 1만명 안팎. 안 그래도 많았던 사람들이 음악분수를 틀고 나서 배 이상 더 늘었단다.

하지만 이런 음악분수도 조명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몸짓이라도 어둠 속에 묻혀 있다면 아무에게도 보일 수 없는 까닭이다. 수성못 음악분수 역시 경관조명 시설과 어울려 더욱 빛난다. 음악분수에 빛을 불어 넣는 존재는 546개의 수중등이다. 음악분수 설치를 맡은 협신랜드스케이프 변상흠 사장은 "이곳 조명은 5년전 달서구 월광수변공원에서 전국 최초로 선보인 LED 수중등"이라며 "조명등 하나하나가 7가지 색을 번갈아 뿜어낸다"고 했다. 레드'그린'블루 삼원색을 기본으로 삼원색의 조합에 의해 화이트, 사이안(하늘색 계열), 마젠타(보라색 계열), 옐로까지 표현 가능하고, 여기에 두 대의 빔에서 뿜어져 나오는 녹색의 레이저가 함께 어울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것.

◇아파트

수성교~대봉교 사이 신천대로를 승용차로 달리다 보면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 경관조명이 있다. 제법 먼 거리의 삼덕네거리에 위치해 있지만 멀리서도 지척만큼 선명한 센트로팰리스 옥탑 조명이 그 주인공. 시공사 경남기업이 서울과 부산 아파트 단지를 돌며 벤치마킹하고 지난해 설치한 센트로팰리스 8개동의 경관조명은 어느새 대구 명물이 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화려한 느낌보다는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최고 높이 43층 옥탑은 녹색 조명으로 처리해 눈길을 끈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이제 대구의 야경을 지배하는 건축물은 단연 아파트가 됐다. 경관조명을 단 전체 111곳 가운데 32곳이 바로 아파트. 주상복합아파트를 중심으로 최근 1,2년 새 입주를 시작한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경관 조명을 이용한 '화려한 밤 치장'에 나서면서 대구의 밤을 바꾸고 있고, 입주민의 관심과 주택업체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 맞물리면서 앞으로도 아파트 경관조명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교량

경관조명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교량이다. 런던의 템스강, 파리의 센강에 끊임없이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건축물 자체의 아름다움도 한몫하지만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조명빛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4월 22일 첫 선을 보인 금호강 서변대교(길이 878m, 폭 25m) 경관조명은 대구의 야경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기폭제라 할 만하다. 11억6천만원을 들인 서변대교 경관조명은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끊임없는 검토와 보완 과정을 거쳐 국내외 어느 교량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을 자랑한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교각 측면에 라인LED조명을 설치해 세계로 뻗어가는 대구를 상징적으로 나타냈고, 방호벽 상단에 5m 간격으로 포인트 LED를 설치해 좌우 움직임과 직선의 리듬감을 표현했다. 또 직선의 날렵한 모양새를 표현한 상판 측면 콜드케소드 조명이 전체적 안정감을 더한다. 평일에는 은은한 빛으로 고요한 느낌을 주고, 주말에는 붉은 색 띠를 넣어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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