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최고의 영웅, 박태환 선수는 대회 기간 중 마시는 물도 특별관리를 받고 있다고 한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배탈 예방을 위해서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뿐 아니다.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원하는 수요는 점점 늘고 있다. 정수기는 짧은 역사에도 웬만한 가정마다 갖춘 가전제품이 됐다. 생수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물 산업의 또 다른 한 축, 정수기산업을 들여다봤다.
◆산업화 수혜 산업
물리·화학·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물 속에 포함된 해로운 물질을 줄여주는 정수기는 위생공산품으로 분류된다. 1997년부터 '먹는물 관리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으며 먹는물 기준에 적합한지 성능시험을 거친 후 품질검사필증인 '물 마크'를 받는다.
정수기 시장의 성장은 다른 물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산업화 등에 따른 아이러니다. 오염된 물이 늘수록 시장이 커지는 것이다. 실제로 각종 조사에서도 우리 국민은 수돗물에 대한 불신 때문에 정수기·생수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수도권 주민 1천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51%가 수돗물이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가운데 가정 식수로 정수기 물(46.6%)을 쓴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또 올해 (사)한국소비생활연구원이 서울시민 8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가정에서 마시는 물 1순위는 '정수기 물'로 39.7%를 차지했고 '끓인 수돗물' 29.0%, '먹는 샘물' 19.9%, '수돗물' 4.1%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애프터서비스 소홀, 불량제품 , 정확한 정보 미제공 등 정수기업계의 문제도 적지않다. 대구시 소비생활센터에 따르면 올 상반기 소비자 상담건수는 911건인 가운데 정수기가 100건으로 가장 많았다. 황경엽 대구시 소비생활센터장은 "중소 정수기업체의 부도로 전국에 피해자가 5천명이 넘은 사례도 있었다"며 "정수기와 관련한 소비자 불만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연간 시장 규모 3천800억원대
국내 정수기 시장은 1970년대 중반 활성탄을 이용한 외국산 정수기가 수입되면서 형성됐다. 1980년대에는 세라믹 필터를 이용한 자연여과식 정수기가 등장했고 올림픽 이후 보급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대중화한 것은 1990년대. 특히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태는 정수기 시장의 급성장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환경부와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수기 시장 규모는 연간 3천800억원대에 달한다.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으로 추산된다. 국내 정수기제조업체도 226개에 이르지만 생수시장과 마찬가지로 상위 10개 업체가 전체 시장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중소기업들이 난립한 상태다.
2000년대 초반 해마다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던 정수기 시장은 성숙기 시장에 접어들고 있다. 국내 보급률이 전체 가구의 30% 이상이라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정수기 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선두권 기업들의 순수 신규계약 건수도 2006년 3분기 이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요즘 TV 채널만 돌리면 나오는 정수기업체들의 광고도 신규 수요 확보보다는 타사 고객 뺏기 경쟁인 셈"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온수기 업체들도 가세, 시장 각축전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물의 수소이온 농도(pH)를 중성인 7보다 높게 만들어주는 이온수기는 관리기관이 환경부인 정수기와 달리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관리하며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하지만 지난 4월 이온수기의 건강기능을 광고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되면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온수기 시장은 올해 2천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 조성근 전무는 "서울 등 대도시는 정수기 보급률이 이미 70% 이상이어서 포화 논란이 일고 있다"며 "정수기시장 성장을 위해서는 가격 인하가 필수적인데 먼저 정부가 정수기 관련 기준을 완화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해외로 간다
국내시장의 수요가 둔화되면서 해외시장 공략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기업체들도 늘고 있다. 고성장에 따라 수요가 클 것으로 예견되는 중국과 동남아시장뿐 아니라 일본·미국과 같은 선진국도 대상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정수기 수출국가는 84개국에 이른다. 수출 규모는 2005년 77만6천346대(수출액 3천990만1천달러), 2006년 94만2천779대(3천506만7천달러)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100만대를 넘어서 101만8천대(3천878만3천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업체들의 내수판매는 2005년 90만6천대(3천750억9천만원), 2006년 110만1천대(4천537억700만원), 2007년 128만1천230대(5천680억원)로 집계됐다.
기업체 가운데에서는 미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5개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월풀 인도법인 등 세계 유명 가전회사에 정수기를 공급하고 있는 웅진코웨이와 2006년 중국 가전회사인 광동메이디그룹과 합자법인을 설립한 청호 등이 앞서 있지만 최근에는 중소업체들도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청호나이스 해외사업팀 전용대 차장은 "다른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해외시장에서는 중국, 대만 등의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저가제품이 경쟁상대가 되고 있다"며 "국내기업들은 상류층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다기능 고가제품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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