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건국 60년이 왜 문제인가

'건국 60주년'이란다. 현 정부가 출범하는 때가 마침 환갑이라고 열을 올린다. 하기야 첫 발을 제대로 내딛기도 전에 두들겨 맞는 정부이다 보니, 분위기 반전에 이만큼 좋은 호재도 드물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 왜 '건국 60주년'이냐고 시비를 건다. 그러니 답은 대한민국이 세워진 때가 1948년이라서 그렇단다. 그러자 대한민국이 건국된 때는 이미 1919년인데 무슨 소리냐고 따지고 든다. 여기에 1919년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완전한 국가가 아니라고 되받아 친다. 완전한 국가를 세운 때가 1948년이니, 건국 60주년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심지어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만들자는 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이에 역사학계가 발끈하고 나서고 있다. 도무지 무슨 난리들인지 국민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대한민국은 분명 1919년에 세워졌다. 우리 역사 5천년에 '군주'가 아닌 '민주' 국가를 세운 첫 걸음이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짓는 회의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때,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나 한국 문제를 다루고 독립시켜 달라는 뜻을 세계만방에 분명히 밝혔다. 독립선언서 첫 머리가 '조선이 독립국이요 조선인이 자주민'이라고 표현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독립국이 대한민국이요, 그 국가를 유지할 조직이 바로 임시정부였다. 국내에서 유지할 수 없으니 망명지에서 세운 것이다. 주어진 영토 안에서 수립된 것보다 훨씬 더 감격적이지 않은가. 그것도 대한제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민주국가요 민주공화정부를 세운 것이다.

서양에서는 민주국가를 세우려고 시민혁명을 거쳤다. 그런데 우리는 독립운동을 통해 민주국가를 세웠고, 그래서 독립운동을 근대국가 수립운동이자 시민혁명으로 평가한다. 황제가 지켜내지 못한 국가를 국민이 되찾으려 나섰고, 그것도 성큼 발전시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운 것이다. 그런데 광복 이후 분단되면서, 남쪽에 세워진 정부는 제헌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밝혔고, 현행 헌법도 그러하다.

국가의 주체성을 살필 때, 國號(국호)와 年號(연호)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는 고려나 조선처럼 독자적인 국호를 쓰면서도, 연호만은 대개 중국 것을 사용했다. 주체성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국권상실기 국내에서 사용된 국호는 일본이요, 연호도 일본 것이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연대 표현은 '민국' 몇년이라 썼다. 1948년 8월 15일 행사의 공식 명칭이 '대한민국 건국 기념'이 아니라 '대한민국정부 수립 기념'이라 부른 사실이나, 관보 1호가 '민국 30년 9월 1일자'로 발간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은 이미 1919년에 건국된 것이고, 1948년 이를 계승하여 새로운 정부를 수립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2008년은 민국 90년이고, 내년은 대한민국 건국 90주년이 된다.

이참에 주변 국가를 돌아보자. 일본은 平成(평성) 몇년이라 적고 서기 몇년이라 병기한다. 중국이나 타이완은 모두 신해혁명 이후를 따져 '민국' 연호와 서기를 같이 쓴다. 심지어 북한조차 '주체'라는 연호를 쓴다. 그런데 우리는 국제화라는 이름 아래 아예 우리 연호를 쓰지도 않는다. 그리고서도 주체성을 말한다. 역사를 이처럼 헌신짝처럼 버리는 판에 주체성을 말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럼 도대체 누가 '건국 60년'을 말하는가. 크게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다. 일제 통치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고 떠드는 사람들이다. 둘째, 분단과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공을 세웠다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공로가 독립운동가들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망언한다. 셋째가 이승만 추앙론자들이다. 독재 역사의 씨를 뿌리고 누리다가 혁명으로 쫓겨난 그를 '건국의 아버지'로 떠받들면서 기념관을 거창하게 짓겠다고 나선다. 정작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선언했으니 참으로 우습다. 이들이 지금 정부를 에워싸고 마구 떠들어댄다. 그 소음에 파묻혀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안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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