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최규수(83·대구 동구 도동) 할아버지에게 젊은 시절 일본에서 보냈던 3년 6개월의 징용 생활은 '악몽'이었다. 17세이던 1944년 9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일본 요코하마의 제철·조선공장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다.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당시 공장 주변 지도까지 상세하게 그릴 정도로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라 잃은 설움이 어떤 건지 우리 세대는 잘 압니다. 매년 찾아오는 광복절이 감격스럽지요."
◆아직도 가슴 아픈 광복절
최 할아버지처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위해 정부가 특별법까지 만들었지만 이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2004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전국에서 22만8천여명이 피해신고를 했지만, 이 중 8만5천여명만 '피해사실을 인정한다'는 통보를 받았을 뿐이다.
최 할아버지는 정부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쳤다. "강제 징용을 보상해준다고 그런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한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받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부 보상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이들도 적잖다. 7개월간 강제노역 생활로 평생을 심장 이상과 물 공포증 등에 시달려온 도계환(84·남구 봉덕동) 할아버지. 도 할아버지는 결국 정부 보상은커녕 자신의 명예가 회복됐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한 채 지난해 6월 사망했다. 2005년 5월 서류를 접수한 지 2년 6개월 만이었다.
도 할아버지는 보상 신청서에 "1945년 2월 일본 니혼바의 한 부대로 강제징용돼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정도의 혹독한 훈련을 견뎌냈으며, 돌아올 때는 거센 풍랑에 배가 휘말려 죽음 직전의 고초를 겪었다"고 적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정부의 보상작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대상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피해사실 인정'과 '보상' 업무가 별도로 진행되면서 피해자들은 오는 9월부터 2010년 6월 10일까지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에 또 한번 신고해야 겨우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강제 징용자들은 지난 2005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지고 3차례에 걸쳐 피해신고 접수를 진행하면서 보상 희망을 가졌지만, 아직까지 연락받지 못한 이들이 태반.
대구에서는 5천649명이 신청해 2천773명(49%)이 결과를 통보받았으며, 경북에서는 2만4천200명이 신청해 이 중 8천156명(33%)만 정부로부터 피해사실을 인정받았다. 나머지는 아직도 심의가 진행중이다. 그러나 대부분 대상자가 80대 이상의 고령인 탓에 심의가 늦어지는 사이 사망·건강문제로 보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고 피해사실을 증명해 줄 동년배의 증인들도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들의 '진정한' 광복은 언제쯤 이뤄질까.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2007년 12월 제정. 1938년 4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의 일제 강제징용자 중 해외에서 사망·행방불명된 사람의 유족에게는 1인당 2천만원의 위로금, 부상자는 장애정도에 따라 1인당 300만~2천만원, 급료 등 미수금 피해자는 당시 1엔을 대한민국 통화 2천원으로 환산해 지급한다. 생존자 의료지원금은 1인당 연간 80만원이다. 2004년 제정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은 진상 규명 및 피해사실 인정 등을, 이 법은 피해자에 대한 지원 등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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