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예쁜 여배우만 좋아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ABC방송의 바버라 월터스 쇼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바버라가 이렇게 질문했다. "당신은 흥미진진하고 도전적인 인생을 살았다. 그 중 최고는 언제였다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카터가 대답했다. "지금인 것 같군요." 그때가 칠순이 넘었을 때다.

'나이 드는 것'을 달가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특히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스타들은 더하다. 흥미롭게 숀 코너리를 비롯해 몇몇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멋있어지기도 한다. 젊을 때 제임스 본드의 '뺀질 뺀질함'이 가시고, 삶을 관조하는 완숙미가 은빛 머리와 수염에 소복이 앉았다.

로버트 드 니로(66)도 여전히 칼칼하고, 알 파치노(69)도 예의 꼿꼿한 맛이 살아 있다. 잭 니콜슨의 쇠 냄새가 나는 목청도 일흔둘이 됐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러고 보니 노년에도 이러한 매력을 뿜는 여배우는 드물다.

스칼렛 요한슨(23)이 최근 여배우에 대한 할리우드의 시선을 성토했다.

"나이가 들수록 남자배우들은 성취를 더하는데, 여배우들은 시들어간다"는 것이다. 23세, 섹시스타로 한창 물오른 여배우가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니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위기감'이 잘 묻어난다.

올해 예순여덟인 페이 더너웨이도 최근 "내가 너무 늙어서 잭 니콜슨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인 역을 할 수 없다는 할리우드 사람들 생각에 너무 화가 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니콜슨이나 이스트우드(79)가 나이가 절반도 안 되는 젊은 여배우들의 상대역으로 나오는데 자신은 고작 엄마나 할머니 역만 맡아야 하는 데 대한 푸념이다.

지난해 '대부'의 다이언 키튼(63)이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코치'에서 속옷차림의 멋진 몸매를 과시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때 세인들은 예순을 넘은 여배우의 몸매에만 주시했지, 사실 그녀의 존재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왜 여배우들에게는 섹시미와 관능미만 찾느냐는 것이 나이 들어가는 여배우들의 한결같은 불만이다.

한때 수억 원을 들여 외모를 관리했던 데미 무어(46)마저 지난해 "40세가 넘은 여배우에게는 비중 있는 역할이 없다"며 20대도, 30대도 아닌 자신을 할리우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요한슨도 "분장가들은 나를 좀 더 섹시하게 보이게 하려고 몇 시간을 보내곤 한다"고 털어놨다.

섹시하지 않은 여배우는 배우도 아니라는 듯한 시선, 아닌 게 아니라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여배우는 '죽고' 남성 배우에 대한 비중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한때 섹시스타로 스크린을 장악했던 안젤리나 졸리(33)도 올해 '원티드'라는 영화에서 29세의 신예 남자배우 제임스 맥아보이에게 밀려나 물에 젖은 나신, 그것도 뒷모습만 보여주고 퇴장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할리우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세태도 마찬가지다.

가수도 섹시하고, 개그맨도 섹시하고, 소설가도 섹시하고, 스포츠스타도 섹시하고…. 어느 직종, 어느 직업이든 '섹시함'이 최고의 미덕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가장 단순한 사실, 곧 행복과 평화, 기쁨, 만족, 모든 형태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나이에 상관없는 진정한 미덕으로 향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지미 카터의 말이 무색해진다.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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