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감 후] 나쁜놈 찾기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쓴소리를 들었습니다. 정확한 지적이었으며 구구절절 도움이 되는 충고였습니다. '쓴소리는 달게 받고 칭찬 발림은 독으로 생각하자'고 다짐해온 편인지라, "고마워. 깊게 새길게'라고 답했지만 솔직히 기분이 편치 않더군요. '아!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아첨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이 싫지 않고 달콤하게 느껴진다면 늙었다는 징후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보수 성향이 강해집니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짧을 것이라고 느껴지는 시점부터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지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하며 지닌 것을 지키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봐도 열혈청년이던 사람들이 나이 먹으면서 많이 보수화됨을 느낍니다. 호기심이 줄어들고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반면, 정보를 얻겠다고 이 뉴스 저 주장 읽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생각과 주파수가 맞는 타인의 주장을 찾아다닙니다. 그것이 바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인지부조화의 늪일 겁니다. 물론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군 복무 시절 소위 '골통'인 고참이 한명 있었습니다. 축구하다가 몸을 부딪힌 상대 병사의 정강이가 부러질 정도로 그는 '통뼈'를 타고난 장사인데다 성질도 포악했습니다.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의 엄석대를 연상케 하는 그는 내무반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가 규율과 서열을 무시한 채 갖은 횡포를 부려도 모두들 숨죽였으며, 일부는 그 권력에 기생했습니다. 그러나 천년만년 권력을 휘두를 것 같던 그 역시 만기 제대와 함께 아주 빠르게 잊혀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은 우리 사회의 한 축소판이었습니다.

한국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나쁜 것일까요? 선악의 기준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애초부터 이 질문은 우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내게 이로운 놈은 좋은 놈이고, 내게 해로운 놈은 나쁜 놈이며, 내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놈은 이상한 놈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나쁜 놈' 찾기가 한창입니다. 자기 기준의 잣대를 상대에게 들이댑니다. 그런데 그 잣대가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편리한 요술을 부리는군요.

촛불 태풍이 한 차례 휩쓸고 간 지금 우리 사회에는 소통 단절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촛불이 사그라지자 정부는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그 기세에 눌려 많은 이들이 '내적 망명'(자기 내부로의 도피를 가리키는 용어)에 빠져듭니다. 세상의 창이 되는 매체도 완전히 달라 보·혁 간의 완충지대가 보이지 않으며, 가치관은 양극화로 치닫습니다.

시스템이 중요하다 해도 결국엔 사람이 모든 것을 정하는 게 세상사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권력을 향한 욕구와 소멸에 대한 공포심을 함께 갖고 있기에 처한 상황·입장에 따라 양면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는 많은 심리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이지요. 이번주 주말판에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대통령 탓하기'와 '8·15를 건국절로 정하자는 움직임에 대한 보·혁 간의 대립'을 다뤘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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