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여검객'. 검도 5단의 여검사 이은미(39)씨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이씨는 대학원에 다닐 때 처음 죽도를 잡았다가 이제는 진검으로 수련하는 검도 5단이다. 내년에는 6단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씨의 검도 사랑은 결국 국내 최초 검도 캐릭터 개발로 이어졌고 결국엔 컴퓨터 게임까지 개발했다.
'검도에 미친 여자' 이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 11일 오후 대구 수성구 신매동에 위치한 일검관(一劍館)을 찾았다. 적막한 도장 안은 늦은 오후의 햇빛이 구름에 가려 더욱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룻바닥을 밟으며 사무실로 가니 짙푸른색 도복을 입은 이씨가 기자를 맞이했다. 검도 사범도 맡고 있어서인지 이씨는 질문 하나에 긴 대답을 쏟아냈다.
◆피아니스트, 劍을 넘보다
이씨는 2004년에 검도 공인 5단을 땄다. 우리나라 여자 검도인으로서는 다섯번째였다. 지방에서는 처음이었다. 지금은 여자 5단이 20여명이다. 이씨는 내년에는 6단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를 통과하면 다섯번째 여자 6단이 된다.
이씨가 검도의 세계에 발을 내디딘 것은 1991년이다. 그녀의 전공은 피아노. 무술영화에서 하늘을 날 때 피아노 줄에 매달려서 찍는다는 것 빼고는 검도와 피아노 사이의 공통점을 찾기가 어렵다. 이씨가 검도를 시작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이씨는 "우리 모친 말씀이 나는 어릴 때 소꿉장난이나 인형놀이를 안 하고 매일 작대기나 칼 들고 휘둘렀다더라"고 대답을 시작했다.
검도에 대한 이씨의 기억은 초등학교 때 어머니 친구의 집에서 본 목검 한 자루가 다였다. 이씨는 "어린 눈에는 대단히 크고 멋있어 보였다. 그걸 보고 나도 나중에 저런 걸 휘둘러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여고 시절 신문에서 '한 여고생이 작은 목검으로 깡패를 물리쳤다'는 기사도 읽었다고 했다. 그래도 여자가 검도를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은 시절이었다.
기회는 1991년에 찾아왔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다가 검도장 간판을 봤다. 이씨는 "검도장에 갔더니 마루 공사가 막 끝나 먼지도 털어내기 전이었다"고 기억했다. 검도는 그녀 말대로 정말 재미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도장을 찾아 죽도를 휘둘렀다. 이씨가 검도에 입문한 이후 적지 않은 여자들이 검도장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중간에 그만뒀다. 이씨는 "나 혼자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니 4단이 되고 5단이 돼 있었다"고 했다. 이씨가 첫 제자라는 안동석(54) 관장으로부터 당시 상황을 들어보자.
"1991년 일검관을 열었는데 처음에 여자가 들어오니까 당황했어요. 내가 조금 보수적인 기질이 있어서 '남자가 1번으로 들어와야지'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첫 제자로 들어왔지만 관원도 없는데 관번으로 4번을 줬어요. 그런데 (은미가) 워낙 열심히 하니까 생각이 바뀌더군요. 새벽 6시 문 열 때 나와서 운동하고 대학원 다니면서 레슨 다 끝나고 저녁에 또 와서 했어요. 그러니까 '여자고 뭐고' 하는 인식도 없어지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 제자를 관번 1번을 안 줘서 되겠나?' 해서 1번으로 환원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남자들 틈에서도 승급·승단을 도장에서 가장 빨리 했어요. 4단 심사 볼 때까지 한 번도 심사에서 떨어진 적이 없어요."
◆담금질 없이 강철이 나올까
시련 없이 성장이 있을까? 이씨는 나름대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공인 5단을 따는 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있을까? 이씨에게 그동안 겪었던 일에 대해 물어봤다.
-음악이랑 검도에 무슨 공통점이 있던가요?
"저희 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음악을 한 사람들이 박자감각이 뛰어나서 그런지 검도 기술도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요. 다른 격투기는 나이가 들면 기량이 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검도는 백전노장의 고수들도 뭔가를 보여줄 수 있어요. 검도는 아름다운 선의 무도예요. 하면 할수록 어렵지만 그만큼 재미있기도 하고요.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다 그렇듯 검도도 완성이란 게 없고 평생 '자기만족' 하며 연구할 수 있죠."
-여자로서 검도 하는 데 불편했겠네요?
"운동하고 나서 샤워할 땐 남자들이 샤워실 바깥에서 다 기다려야 했어요. 남자들은 많고 여자는 저 혼자니까 제가 먼저 했거든요. 얼른 샤워하고 나오고 그랬어요. 1년 정도 지나서 여자 단원이 30~40명이 되니까 여자 샤워실이 새로 생겼어요. 검도가 너무 재미있어서 아침저녁으로 했는데, 아침에는 못 일어나서 까치머리 해서 가면 선생님이 '머리도 안 빗고 온다'고 놀리셨어요."(안관장은 이씨가 당시 "빨간 운동화를 구겨 신고 머리는 새집을 지은 모습으로 왔다"고 회상했다.)
-검도 하면서 기쁘거나 서러웠던 적은 언젠가요?
"물론 기뻤던 일은 큰 시합에 나가서 우승을 했을 때죠. 그리고 대장전(연장전)에서 한판 대결을 벌이는데 내가 나가서 이겨 우승을 했던 일이 잊히지 않아요. 제가 이기면 우승이었고 지면 준우승이었어요. 올림픽 하면 금메달만 기억하지 은메달·동메달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잖아요? 검도도 똑같거든요. 우승만 기억하지 아무도 준우승은 기억 안 해요. 우리 선생님이 젊으셨을 때는 우승 말고는 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게 나름대로 서럽고 섭섭하기도 했어요. 4단 심사 볼 때도 그랬고요. 그날 분명히 '빼어나게 잘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이은미는 공부 좀 더 해야 한다'면서 떨어뜨린 경우도 그렇고. 5단 심사 보러 갔을 때도 합격했다고 축하 꽃바구니까지 다 받았는데 떨어진 것도 있었고요."
-시합은 언제부터 나갔나요?
"첫 시합을 3급 때 나갔어요. 10월달에 검도를 시작하고 6개월쯤 됐을 때였죠. 초단하고 시합을 했는데 연장전까지 갔어요. 시합 중에 상대방이 다가오다가 제 죽도에 찔려서 넘어졌어요. 일어나는데 보니 눈에 눈물이 흐르면서 눈이 새파래져 있더군요. 독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연장전에서 오른 손목을 살짝 맞았는데 판정 기가 올라가기에 억울해서 선생님한테 가서 막 따졌죠. 당시에는 한국 여검사 중 최고라는 3단의 실력도 저한테는 세게 안 보였거든요. 건방이 하늘을 찔렀죠. 제일 아쉬웠던 건 1997년인가 국가대표 선발전 때예요. 제가 대구 대표로 가서 평가전 1차는 통과를 했어요. 그런데 그때 개인적으로 열심히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됐거든요. 검도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게 가장 큰 꿈이었는데. 그 이후에도 그 꿈은 항상 간직하고 있었어요.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미국의 토레스라는 수영 선수가 41세에 은메달을 땄더군요. 3년 뒤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록 체력적인 면이나 모든 것이 떨어지겠지만요."
◆검의 본고장에서 진검을 배우다
이씨는 검도의 종주국인 일본에서 수련하기도 했다. 일본의 대선생에게서 직접 제대로 배워 오라는 안 관장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25년 전부터 스승님과 교류를 해오신 사카이 도시오라는 분한테 작년에 3개월간 지도를 받았어요. 검도 8단의 '범사(範師)'인데 검도에서 최고 단이 8단이고 최고 칭호가 범사거든요. 선생님(안 관장)도 거합도를 하시니까 배우긴 했는데 대선생님한테 진검을 제대로 배우고 온 거죠."
이씨는 사카이 범사로부터 일본에서 전통 있는 '야규 신카게류(柳生 新陰流)'의 검형 33가지를 배웠다. 야규(柳生)가는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집안의 검법 사범을 했던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의 후손이다. 그녀는 야규 집안에서 내려온 비전을 배운 것이다. 이씨는 "당시 갑작스럽게 결정이 나서 일본어를 안 배우고 가는 바람에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몸으로 배우고 왔는데 세밀한 부분까지 이해를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그래도 일부 검형은 1년 넘게 수련하는 것도 있다는 설명을 듣고 보면 이씨의 학습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해할 만하다.
지금은 진검 수련을 하고 있는 이씨도 4단 승단 심사를 준비하며 처음 진검을 잡았을 때는 울어 버렸다. 이씨는 "진짜 손목 잘릴 뻔도 했다"며 왼손 엄지에 나 있는 상처를 보여 주었다. "거합도 연습용 검으로 해도 이 정도인데, (그땐) '4단 심사 안 볼 겁니다'면서 엉엉 울었다"는 얘기도 이어졌다.
여검사로서 이씨의 포부와 희망은 무엇일까? 이씨는 "검도회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검도를 중심으로 아이들 창의성도 키우고 문화 교육도 하고 싶단다. 이씨 자신이 예절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다도를 배우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이씨는 "여성들에게도 검도를 많이 가르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검도 사랑이 지나쳐서였을까? 이씨는 아직 '솔로'다. 그리고는 "끝에 꼭 물으시더군요? 결혼은 못 했어요. 기공을 하시는 연변대 한 교수가 저를 보더니 '세상에 너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그러시더군요. 주역을 하는 수강생한테 '도대체 언제쯤 때가 될지 나오면 좀 알려 달라'고 부탁해 놨어요. 괘가 나오면 알려 드릴게요"라며 웃었다.
검도 자랑을 해보라 했더니 자녀 인성 교육은 물론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엄마들 인성도 같이 다듬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대한민국의 모든 여자들이 검도를 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검도가 전통무예는 아니더라도 칼을 쓰는 문화가 흘러갔기 때문에 무조건 '일본색, 왜색'이라고 비난만 할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입고 있는 도복이 고구려 복식에서 유래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이은미는?
1969년생. 2004년 대구 여성 최초(전국 다섯번째)로 5단으로 승단했다. 1993년 회장기 타기 3·1절 검도대회 단체전 우승을 시작으로 개인전 우승 2회를 포함해 다수의 단체전에서 우승했다. 첫 여성심판이 됐고 여러 직책을 지냈거나 맡고 있다. 대구여성유단자 모임 '죽향'을 창립하는 등 여성 검도인 융화와 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1999년 국내 최초로 검도 캐릭터 4종을 개발해 특허청에 등록했으며 2002년에는 온라인게임업체를 창업해 컴퓨터 게임을 개발해 동남아 6개국에 수출계약도 맺었다. 현재 검도 게임을 준비 중이며 서울의 한 게임개발업체와 협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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