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장님]칠곡 왜관15리 이장 김기준씨

30년간 공직경험 주민에 서비스…보스톤대회도 출전한 '마라톤광'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해 완주하고 있는 김기준 이장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해 완주하고 있는 김기준 이장

칠곡군 왜관읍 왜관15리 삼성아파트 400여가구를 뒷바라지해 오고 있는 김기준(61) 이장. 김 이장은 공무원 출신이다. 2005년 칠곡군청 건설과 지방기능장(기계직 6급)을 끝으로 30여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한 현장 행정의 달인이기도 하다.

정년퇴직 이후 행정 서비스의 최첨병인 마을 이장을 맡은 지 벌써 2년 남짓. 이 같은 이력을 가진 김 이장에게 주민들은 행정기관과 관련된 각종 업무를 아예 믿고 떠맡긴다. 또 김 이장 스스로도 주민들이 뭘 원하는지 먼저 파악해 알아서 척척 챙겨준다.

김 이장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신참 공무원들이 첫 보직을 받기 전 얼마간이라도 마을 이장 업무를 꼭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가의 공복(公僕)이 주민들을 어떻게 받들어야 하는지를 마을 이장을 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됐다"는 것.

"동네의 좋은 일, 궂은 일 등 가리지 않고 쫓아다니려면 우선 마을 이장이 건강해야 합니다." 김 이장은 마라토너 이장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서윤복 선수가 세계신기록을 세워 우승한 '보스턴 국제마라톤대회'에까지 출전할 정도로 가히 마라톤광(狂)이다.

지난 2004년 4월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김 이장은 3시간30분30초를 기록하고 완주했다. 보스턴 마라톤은 만 55~59세 참가자의 경우 공식인증 기록이 3시간45분 이내가 아니면 출전 자격조차 주지 않는 대회다.

"마라톤 결승점 통과의 환희는 고난의 여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주행 기록 또한 속일 수 없는 것처럼 마을일을 꾸려가는 이장의 업무도 속임수나 허세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 이장의 평소 지론이다.

이처럼 김 이장은 100㎞를 14시간 내에 달려야 하는 서울 울트라마라톤, 대한육상경기연맹이 공식 기록으로 인증하는 동아마라톤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등 크고 작은 대회에 거의 한번씩은 참가해봤다. 요즘은 1년에 풀코스 1회, 하프코스 2회 정도로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김 이장은 "마라톤에서 너무 욕심을 내고 달리면 절대 결승점을 통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도 마라톤처럼 쉬지 않고 성실히 살면 분명히 성공한 삶을 맛볼 수 있다"며 "오랜 공직생활 후에 다시 마을 이장을 맡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고 말한다.

근면 성실은 김 이장에게 유년시절부터 몸에 밴 생명력과 같은 것이다. 그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학교 졸업 이후 산업현장에서 '공돌이' 노릇을 했다. 그래도 배움의 끈은 놓지 않았다. 방송통신고를 나와 평소 꿈이던 공무원이 됐다.

주경야독. 낮에는 공무원, 밤에는 대학생이었다. 불혹이 훌쩍 넘은 나이에 자식 같은 학생들 틈에 끼어 대학과정을 마치는 만학도가 되기도 했다. 김 이장은 선행의 전도사이기도 하다. 공무원 시절부터 20년이 넘게 박봉을 쪼개 이웃을 위해 나눴다. 매년 김장철이면 300~400여포기의 김치를 담가 소년소녀가장과 홀몸 노인가구 등에 전한다.

보육원·요양원 등 불우시설에 각종 생필품을 정기적으로 넣어주는 등 남모르게 한 각종 선행이 알음알음으로 방송사까지 퍼져나가 '칭찬'을 테마로 한 프로그램(MBC 칭찬합시다)의 주인공으로 선정돼 매스컴을 타고 연말에는 '좋은 한국인 대상'까지 받았다.

또 김 이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한 소년가장이 꿋꿋이 자라 청년 사업가가 된 후 방송사(KBS TV는 사랑을 싣고)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김 이장을 꼭 찾아줄 것을 의뢰한 것을 계기로 김 이장의 선행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알려지기도 했다.

20년 전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조모와 생활하면서 김 이장의 후원을 받고 자랐던 장모(30)씨의 경우 현재 결혼을 하고 달성공단에 취업해 가끔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찾아와 훈훈한 정을 나눌 때는 정말 사는 재미를 느낀다고 귀띔했다.

"자신이 부자여서 남을 돕는 게 아니라, 평소 조금 적게 먹고 적게 쓰면 조금이나마 도울 여력이 생기게 된다"는 김 이장은 오늘도 아침이고 저녁이고 시간만 남으면 운동화 끈을 조이고 자신과 마을 주민들을 위해 뛰고 또 뛴다.

칠곡·김성우기자 swki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