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醫窓)] 의사처럼 하면…

의사들이 하는 농담 중에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살지, 의사가 하는 대로 따라 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물론 의사 중 일부가 그렇겠지만, 의사 자신은 오히려 건강에 무감각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빗댄 자조적인 말이다. 온갖 질병과 수많은 환자를 마주하다 보니 그 때문에 무뎌져서 그러려니 하더라도 참 부끄러운 말이다.

나는 속이 아파 지난 2주간 무척 고생을 했다. 새벽마다 아파서 잠을 못 이룬 적도 여러 번이었다. 짚이는 까닭이야 물론 있다. 아프기 전 거의 한 달간을 '행사다' '무슨 회식이다'해 그리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자주 마셨다. 거기에다 식사가 불규칙한 것은 수술과 외래 등을 핑계로 너무 오래 되어서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일과 후에도 팀의 일, 과의 일, 병원일 등등 일일이 쫓아다니며 몸까지 바쳐 챙기다 보면 절제되고 규칙적인 생활은 꿈도 못 꾼다.

그래서 지난주는 위염치료제를 복용하면서, 잠 못 이루며 고통에 시달린 얼굴로 수술도 하고 외래진료도 보았다. 수술이야 전문업인 만큼 익숙한데다 복면(?)까지 쓰고 하니 부담이 없지만 외래는 다르다. 전에 나에게 수술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나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는 분들을 내가 푸석푸석한 얼굴로 진료하는 모습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거기에다 환자 몰래 미리 들어와 이렇게 당부하는 보호자도 있다. "제발 환자에게 계속 술 마시면 곧 죽는다고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술을 너무 자주 마시는데 하도 가족 말은 안 들어서…." 사실 외래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긴 하지만 지난주의 경우는 내가 민망해서 대답할 염치도 없었다.

얼마 전에 외래 진료 후 방으로 돌아오니 택배가 도착해 있었다. 사과 상자만한 크기였는데 꽤 무거웠다. 쪽지를 보니 예전에 내게 수술을 받았던 분이었고 전화번호가 있었다. 바로 전화를 하니 "아이구, 제가 많이 건강해져서 감사합니다. 뭐 별것은 아니고 교수님이 좋아할 것 같은 걸 좀 보냈습니다"라고 하신다.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무얼까 궁금해서 상자를 열어보니 45도가량 되는 600㎖짜리 민속주가 10병이나 있었다. 너무나 고맙지만 다 마실 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어쨌든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의사처럼'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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