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진실보다 소중한 본질

우리는 곧잘 화를 내고 속상해하고 다투는데, 막상 그 이유를 물어보면 정확한 답변을 못한다. 본래의 내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가장 중요한 핵심을 망각해 버리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 부인이 남편 샤워습관으로 인해 자주 다투었다. 욕실 곳곳에 물이 튀니 조심하라고 했지만 남편의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고민 끝에 부인은 샤워커튼을 달았고 그 안에서 하라고 요구했다. 문제는 샤워커튼을 단 후 더 많이 다투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샤워커튼이 있는데 사용을 안 하느냐' '왜 여전히 물을 튀기느냐'로 말이다.

어느 날 부인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샤워커튼 사용여부가 아니라, 부부가 싸우지 않고 잘 사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커튼으로 인해 오히려 더 다투게 되니 곧바로 떼어내 버렸다. 이 부인의 깨달음이 바로 본질을 생각하는 지혜로움이다.

다른 예를 보자. 초교생 아들을 둔 어머니는 금쪽보다 귀한 아들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마음에 무리해서 고가의 명품 옷을 장만했다. 명품 옷을 입히게 되니 혹시 옷이 상할까 더러워질까 종일 아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행동을 규제하고 잔소리도 늘어났다.

'명품 옷이 중요한가, 아들이 더 중요한가?' 이렇게 묻는다면 당연히 아들이 더 귀하고 아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답할 것이다. 명품 옷으로 인해 아들을 꼼짝 못하는 '인형'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차라리 명품 옷을 벗기고 값싼 옷을 입혀 마음 놓고 실컷 뛰어놀게 하는 게 더 낫지 않는가.

예전과 달리 이 시대에 현명한 부모가 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또 다른 사례다. 고교생 딸에게 이성친구가 생겼다. 그날부터 딸의 귀가시간이 조금만 늦으면 초조해지고 머릿속엔 온갖 불길한 상상이 들끓을 것이다. 본질이 무엇인가? 부모가 제일 염려되는 것은 혹시나 딸의 몸과 마음이 상처받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수동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걱정만 하기보다 차라리 딸에게 남성의 성 심리와 월경주기, 피임법 등 솔직한 성교육을 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겠는가.

무심히 대하고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다양한 인간관계, 사건 사건마다 정말 소중한 본질이 무엇인지 잠시만 숨을 가다듬고 찾아보자. 소중한 본질이 진실에 가려져 관계를 해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김은지 경산시청소년지원센터·문화의 집 소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