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대통령과 친인척 비리

" 내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너희들에게 괴상한 인간들, 소위 똥파리들이 접근할 것이다. 그들은 돈을 싸들고 와 알랑대면서 인사부탁, 이권청탁을 할 것이다. 그돈은 독약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단돈 100원을 받거나 청탁에 관여할 경우 즉각 구속시킬 것이다. 똥파리들을 조심하거레이…,"

김영삼 대통령(YS)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 10일 뒤인 1992년 12월 29일 저녁 서울 상도동 집에서 아들, 딸, 사위, 조카 등 50여명의 친인척들을 불러 당선과 생일을 자축하는 자리에서 경고한 말이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둘째아들 김현철은 이상한 인간들과 어울려 검은돈과 국정운영 등에 관여해 구속되고 국회청문회에 불려나가는 등 YS의 임기말년을 불명예로 얼룩지게 했다.

" 우리아이들은 과거 독재시절 나 때문에 혹독한 시련을 겪어 부정과 비리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DJ)이 취임초인 1998년 3월 친인척들의 부정비리의 방지책을 묻는 기자 질문에 대해 자신만만하게(?) 밝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란한 소문 끝에 세 아들이 나란히 비리에 연루되고, 그중 두 아들은 구속되어 국민들을 심히 불쾌하게 했다.

" 우리집안에는 검은돈을 받을 만한 위인도, 또 비리를 저지를 만한 인물도 없으니 여러분들은 안심하셔도 괜찮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후 형님의 "인사개입"說(설)이 꼬리를 물자 고개를 저으며 자신 있게 한 말이다. 그는 당선직후인 2002년 12월 말 민주당의 의원들 모임에서 " 앞으로 이권이나 인사청탁에 개입하면 敗家亡身(패가망신) 시키겠다" 고 강조해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바 있었다.

역시 그러한 嚴戒(엄계)는 얼마 못가서 흔들렸다. 고향인 봉하마을에 살고 있는 형님이 일약 "실력있는 봉하대군"이라는 소문 속에 국세청 등에 인사청탁을 한 혐의가 드러나고 그뒤 조카와 처남 등의 이런저런 관련 혐의설이 계속 잇달아 국민들을 어리둥절케했던 것이다.

" 누가 와서 그러는데 ○○사업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더구먼. 나도 이제 농사짓기보다 사업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고회의의장시절 고향인 구미의 상모리를 찾았을 때 70대의 큰형님인 동희(東熙)옹이 건넨 말이다. 박의장은 똥파리들이 순박한 형님을 꾀었다고 보고, 지역 경찰서장에게 상모리에 초소를 세워 괴상한 인간들의 親姻戚(친인척)들에 대한 접근을 철저히 막고 전국의 모든 친인척들을 엄정관리하게 했다. 이런 감독은 눈을 감을 때까지 계속했다.

건국 이후 60년 동안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자신 또는 친인척들이 거의 비리와 무관하고 온갖 구설수가 없었던 이는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세 대통령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4~6개월 사이 전국을 뒤흔들었던 쇠고기수입, 금강산피살, 독도파문등이 한고비 넘길 무렵 뜻밖의 친인척비리가 불거져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영부인의 사촌언니인 김옥희씨가 지난 총선전 한나라당의 공천에 개입을 기도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김씨는 서울시버스사업조합이사장인 김종원씨에게 비례공천을 받게해 준다며 30억3천만원을 받았다가 불발이 되자 23억원을 돌려줬으며, 또 윤·한모씨 등 2명에게 공기업의 감사를 시켜주겠다며 각각 5천만원씩을 받은 불법혐의가 검찰수사 결과 밝혀졌다.

검찰은 김씨가 영부인과의 인척관계를 이용, 허세를 부려 공천장사 등을 했으나 하나도 이뤄진 게 없다고 발표했으나 야당과 많은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고 정치적 파장 역시 심상치가 않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의 못된 친인척들의 숱한 부정과 비리에 관한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는 국민들은 새정부가 들어서니 또다시 친인척들의 비리분탕질이 재연되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를 했을 것이다.

도대체 친인척들 비리의 근절대책은 없는 것인가. 모든 공공기관에 어떠한 대소의 不正(부정)한 청탁과 압력이 들어올 경우 이를 즉각 국민에게 공개하고 청와대에 보고하는 시스템(체제)을 왜 운영하지 않는가. 당연히 공개 또는 신고하지 않은 공직자를 파면하고, 관련된 친인척은 가차없이 嚴罰(엄벌)해야 할 것이다. 권력자의 측근들의 경우도 예외없이 공개 엄벌해야한다.

이 대통령은 8·15기념사에서 " 어떠한 비리도 절대로 관용은 없다"고 선언했다. 이런 원칙은 반드시 인척비리와 측근비리부터 적용해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국민들은 하나하나 지켜볼 것이다.

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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