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폭탄' 의성 망연자실

15일 집중호우…집도 논도 사라지고 뻘밭만 남아

▲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 김석필 할머니가 주택이 침수돼 가재도구들이 흙더미로 뒤덮이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희대기자
▲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 김석필 할머니가 주택이 침수돼 가재도구들이 흙더미로 뒤덮이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희대기자

"70평생을 살아왔지만, 이번 같은 피해는 처음입니다. '국지성 폭우'라기보다는 차라리 '물폭탄'이었습니다."

15일 오후 집중호우가 내린 의성 옥산·점곡·봉양·사곡 등 수해가 발생한 지역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수마가 할퀴고 간 농경지는 돌과 흙더미만 수북이 쌓여 있었으며, 침수된 주택의 가재도구들은 흙탕물과 돌멩이들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16일 오후 1시 점곡면 구암리 구암정미소. 한쪽에서는 수십명의 여성자원봉사자들이 가재도구 등을 물로 씻고 있는 가운데, 정미소 주인 서임수(57)씨는 소하천이 범람하면서 순식간에 물바다가 된 정미소 안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손을 써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김복규 의성군수·정해걸 국회의원 등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정미소 안은 발목까지 진흙으로 가득 차 바닷가 뻘밭이나 다름없었다. 구암정미소에서 3㎞ 정도 떨어진 구암1리도 피해는 마찬가지였다.

물폭탄을 맞아 졸지에 집을 잃어버린 김성용(77)씨는 "기가 찰 뿐…"이라며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15일 오후 마루에 앉아 있다가 집 앞 소하천이 범람하면서 갑자기 집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와 산으로 긴급히 피했다가 돌아와 보니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것.

옥산면 전흥리도 점곡1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싹이 팬 벼는 흙자갈로 뒤덮여 이미 논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공무원들이 벼를 일으켜 세우고 돌을 치워냈지만, 역부족이었다. 복구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하천 건너편에 사는 김석필(83) 할머니도 넋을 놓은 채 앉아 있었다.

김 할머니 집 역시 집 앞에 있는 소하천이 범람하는 바람에 콘크리트 담장이 맥없이 무너지면서 안방과 가재도구들이 모두 흙더미에 묻혀버린 것. 의성군청 여직원들이 가재도구들을 물로 씻고 있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할머니의 뺨에는 연방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웃의 한 주민은 "귀가 어두워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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