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베이징] 밖에는 암표상…안에는 빈자리

중국인은 재물이 생긴다는 '發財(파차이)'의 '發(파)'와 숫자 '八(빠)'의 발음이 비슷해 숫자 중에 8을 좋아한다고 한다. 때문에 올림픽도 8월 8일에 개막했다는데 올림픽 특수를 노리고 숙박요금을 천정부지로 올린 데 이어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되자 암표가 말썽인 것을 보면 역시 재물을 드러내놓고 좋아하긴 하나 보다.

올 초부터 호텔 숙박비를 5~10배 이상 올려 불렀다가 막상 찾는 이가 기대만큼 많지 않자 뒤늦게 가격을 내려보지만 갑자기 손님이 찾아들길 바라는 것은 무리. 게다가 테러 방지를 명목으로 외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했으니 더욱 발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7월 말 기준 4성급 호텔의 숙박 예약률도 예년보다 30% 이상 낮은 50%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각종 통제로 성공적인 올림픽을 목표로 뛰고 있는 중국 당국이 이를 몰랐을 리 만무하다. 손님들을 내쫓는 악수가 될 줄 알았더라면 가만 놓아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 곳이 문제가 되더니 이제는 볼 곳에서 소란이 일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이미 개막식 10여일 전 680만장의 입장권이 모두 매진됐고 그 중 4분의 3 정도는 중국 내에서 판매됐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권을 구입한 경기 당일 다른 일이 있는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경기장 곳곳에 빈자리가 수두룩했다.

이는 결국 암표상의 맹활약 덕분(?)으로 보인다. 개인이 살 수 있는 입장권 수를 제한했으나 온라인 경매 사이트 등을 통해 암표상들에게 입장권이 많이 흘러들어갔다는 소문이 새삼스럽지 않다. 지난 13일 베이징 우커성 야구장에서 열린 올림픽 야구 예선 한국과 미국과의 경기는 매진 사례였으나 정작 외야석은 비어 있었고 이날 암표상들은 30~50위안인 입장권을 1천500~2천위안을 부르곤 했다.

16일 야구 한·일전이 벌어진 날에 경기를 보러갔다가 경기가 중반 이상 진행됐을 때까지도 암표상들이 가격을 깎아 팔지 않자 아예 스코어만 나오는 경기장 밖의 전광판 앞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쳤다는 관광객도 있었다. 그 무리에 끼어 있던 한 교민은 "어차피 다음 경기라도 보러올 사람들이니 미리 싸게 팔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 상술 한 번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관중 수가 적다고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강한 항의를 받은 탓에 중국 당국이 암표 거래를 공공연히 묵인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 그런데 15일에는 올림픽 주경기장 일대에서 암표상 110여명을 붙잡아 구속하고 입장권 340장을 압수했다고 한다. 암표상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경기를 보고픈 사람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를 형국이다.

베이징에서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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