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김수임

1920년대를 전후하여 한국 사회에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여성들이 등장했다. 뾰족구두에 짧은 파마머리, 모자 등은 그녀들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른바 '新女性(신여성)'이니 '모단(毛斷'modern) 걸'로 불렸던 부류다.

신여성은 전 세계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러시아 혁명(1917) 전후의 역사적 산물로 등장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전쟁으로 부족해진 남성 노동력을 여성이 대체하게 되면서 종래의 현모양처형 여성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여성들이 등장, 일종의 사회 세력을 형성하게 됐다. 당시 세계를 휩쓴 여성해방론을 주창하며, 여성들의 잠든 의식을 깨우는 일에도 앞장섰다.

우리나라에서도 1920년대를 전후해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나타났다. 여성들이 가정의 울타리에만 안주했던 그 시절에 그녀들은 여성현실에 대한 자각과 함께 여성교육운동 및 사회활동을 펼쳐나갔다. 의사'교사'기자 등 전문직에서 활동하며 여성 능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다.

여권론'여성해방론에 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자유연애나 자유결혼, 이혼을 주장하기도 했다. 서양인을 본떠 姓(성)을 남편 성으로 바꾼다거나 이름을 서구식으로 바꾸는 사례도 있었다. 더러는 지나친 겉멋으로 흐르는 바람에 사회 및 가정과 갈등을 일으켰고,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받았다.

세칭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수임(당시 39세)도 신여성의 한 명이었다. 이화여자전문을 나온 인텔리로 뛰어난 영어실력을 내세워 사교계 여왕으로 군림했던 그녀는 동거했던 미군 대령 베어드와 공산주의자인 연인 이강국 사이에서 이중 간첩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결국 '간첩이적행위'라는 죄명으로 1950년 6월 28일 처형됐다.

그런데 최근 미군 측은 관련 비밀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김수임이 실상은 한국 경찰의 고문을 못 이겨 허위자백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베어드 대령이 당시의 민감한 군사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없어 김수임이 북측에 넘겨줄 기밀을 얻어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의 격동기 한때를 풍미했던 신여성 김수임, 60년 가까운 세월 너머 그 사건이 새삼 관심을 끈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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