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비겁자' 앞에 엎드린 日 총리들

야스쿠니 神祠(신사)!

왜 일본의 정치 지도자나 각료들은 8'15만 되면 그곳을 참배하려고 기를 쓰듯 하는가?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번 8'15에도 야스쿠니를 찾아갔다.

총리 자리에 있을 때는 찾아가지 않았던 아베 전 총리도 올해는 찾아갔다.

일부 각료들도 참배했다.

전 세계의 빈축과 반발을 무릅쓰면서 줄기차게 찾아가는 야스쿠니!

과연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영령들은 국제적 마찰과 인도적인 비난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참배해야 할 만큼 위대한 사람들일까?

그 해답을 찾아 63년 전 여름으로 되돌아가 보자.

'탕!'

태평양 전쟁 戰犯(전범) NO.1 도조 히데키 일본 육군장관 겸 참모총장의 욕실에서 한 발의 총소리가 난다.

1945년 9월 11일 낮, 국제군사재판소 체포조가 들이닥치기 직전 심장 쪽에 표시를 해둔 표적에 맞춰 권총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패전 후 전범 재판 준비가 진행될 동안 그는 평소 자살에 대비, 의사에게 부탁해 심장 위에다 먹으로 자살용 표식을 해놓고 있었다.

목욕 때마다 다시 그려 놓았다. 그러나 그날 자살 총알은 빗나갔다.

나이가 들어 가슴팍 살갗이 늘어져 그려둔 표식이 심장 위치를 벗어났던지 총알은 빗나갔다.

왜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관자놀이를 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는 비참한 몰골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그의 자살미수가 알려지자 세간에서는 자살이 '연극'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튿날 본토 방위 제1 총군 사령관이었던 스기야마 元帥(원수)가 자살하고 원수의 자살소식을 들은 게이코 부인도 소복을 갈아 입은 뒤 단도로 단숨에 심장을 찌르고 자결했다.

부엌에 있던 가정부도 몰랐을 만큼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스기야마 부부의 자살은 도조 히데키 자살이 더더욱 '연극'이었고 신용 잃은 사나이의 '추태'였으며 '스기야마 부부를 보라'는 비웃음을 사게 했다.(참고문헌:아사히신문 '동경재판')

당시 미국의 신문들도 도조의 자살미수를 사나이의 치욕이라며 톱기사로 썼고 일본 신문만 3단짜리 하단기사로 조그맣게 처리했다.

일본 언론 스스로도 그들 우상의 어설픈 자살 연극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아녀자도 자그만 단도로 단숨에 심장을 찔렀는데 육군대장은 제 가슴의 심장 위치도 모르고 헛총을 쏘고 살아남아 법정에서 뒷좌석에 앉은 부하 전범으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는 수모까지 당한 인물!

그러고도 며칠 전에 폭로된 자신의 手記(수기)에서는 '겁쟁이 내각, 얼빠진 국민정신' 탓에 패했다고 비겁하게 발뺌한 인물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의 1급 주인공이다.

어쩌면 그런 역사적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고이즈미나 아베가 마음속으로는 존경하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이용대상으로 신사를 들락거리는 건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총리 때는 발걸음도 않다가 총리 끝나자 다시 참배한 아베의 경우, 일관된 소신이라기보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절할 때도 있고 고개 돌릴 때도 있다는 식으로 주판알 튕기듯 신사 영령을 이용한다는 오해의 여지까지 남긴다.

패전 63주년이 되는 이번 8'15는 올림픽 축제기간과 겹쳤다.

만약 이번 베이징에서 72년 전 베를린 올림픽 때 강탈해간 손기정 선수의 '투구'를 올림픽 정신으로 반환하겠다고 했다면 국제사회로부터 금메달 급의 성숙한 국가로 칭찬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큰생각은 품지 못했다. 투구 반환은 고사하고 고작 세계의 축제기간에 야스쿠니나 찾아가 제 나라와 국민을 욕한 '비겁한 자살 연극자' 앞에 엎드리는 짓밖에 못했다.

섬나라 정치꾼들의 한계를 본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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