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가명·중2)는 친구들 사이에 '범생'(모범생)으로 통한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거나 학원을 빼 먹지도 않는다. 그러나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부모님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시험 성적만 나오면 민수에게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느냐' '제발 공부 좀 해라'고 닦달한다. 민수는 답답하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을 난들 어쩌란 말인가? 부모님께 대놓고 반항은 않지만 공부가 점점 싫어지고, 마음 속엔 부모님에 대한 불만이 쌓여간다.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아이들은 학습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그럴수록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심지어 성적 때문에 부모와 자녀 관계가 악화되기도 한다. 이런 고민 때문에 학습클리닉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학습 부진(장애)의 원인을 찾으려면 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학습클리닉이란?
학습클리닉은 '물고기를 잡아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물고기를 잡아서 요리까지 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성적이 떨어지거나 오르지 않는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한 진단을 한다. 그리고 진단 결과에 따라 개인에 따른 맞춤식 학습 향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대구에는 4, 5년 전부터 정신과에서 학습클리닉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학원, 심리치료연구소, 한의원까지 가세하면서 학습클리닉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대구 서구 평리4동 M정신과 부설 학습클리닉. 이곳은 학습 부진, 학습 장애 등의 문제를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원인 검사와 함께 학습 향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집중력이나 학습능력을 높여주는 '뉴로피드백'(최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뇌파상태를 만드는 훈련)도 실시한다. 특히 방학 때면 상담과 치료를 받으려는 학생과 학부모들로 붐빈다. M정신과 김성미 원장은 "지능이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며 "단순한 심리적 원인뿐만 아니라 뇌 영역이나 정신과적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럴 땐 약물처방도 함께 한다"고 말했다.
달서구 용산동 S심리건강연구소는 방학 동안 5일 일정의 '신나는 공부방법 배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초교 4~6학년, 중학생, 고교생 등으로 구분해 하루 3시간씩 '공부의 기술'을 가르쳐 준다. 부모를 대상으로 자녀들에게 학습 동기를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을 지도하고, 아이들에겐 ▷목표 세우기 ▷시간관리 ▷집중력 향상 ▷각종 학습 전략 ▷기억 및 시험전략 등을 주제로 강의와 실습을 병행한다. 이곳 김난희 기획실장은 "공부를 하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들 중 상당수는 효율적인 학습법을 몰라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반적인 공부 방법을 지도하면서 1대 1 맞춤식 학습클리닉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구 봉산동 J아동발달클리닉도 부모 상담과 학생의 기초학력 평가 등을 거쳐 개별 학습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종헌 원장은 "학습지 공부나 학원 수업을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부모와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단순히 공부하는 방법만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을 심어주고 학습동기를 부여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부에 영향 미치는 6가지 요인
정신과 전문의들은 학습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보통 여섯 가지를 꼽는다. 첫째, 신체적 요인이다. 학생의 체력과 영양 상태를 평가한다. 둘째는 심리적 요인. 학습동기, 자신감, 학습태도를 보는 것이다. 셋째, 환경적인 요인이다. 부모, 친구, 형제, 교사와의 관계를 보는 정서적 환경과 공부방이나 집안 환경 등의 물리적 환경을 파악한다. 넷째, 지능에 대한 다각적 평가를 하는 두뇌 요인이 있다. 다섯째, 학습기술 요인이다. 이는 공부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공부기술에 대한 것이다. 여섯째, 교과특성 요인이다. 교과 내용에 대한 지식수준에 대한 평가를 말한다. 학습클리닉에서는 이들 요인별로 다차원적인 종합평가를 한다. 전산화된 첨단도구는 학습능력, 학습방법, 인지기능 등을 평가한다. 학습 향상 프로그램은 면담과 평가제안, 평가, 프로그램 계획, 프로그램 실시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김성미 원장은 "이들 여섯 가지 요인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학습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며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이 모델에 따라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요인들에 대한 평가는 개별 상담을 통해 포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학생마다 특성이 다르므로 검사의 구성도 사람마다 다르다. 자녀에게 적합한 평가 종목을 부모와 논의한 뒤 해당 분야 전문가가 검사를 한다. 부모와 함께 검사 결과를 보고 부족한 요소들은 향상시키고, 잠재능력을 찾아 개발시켜 주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자녀의 자신감은 부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모도 함께 인성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다. 특히 아버지가 자녀를 위한다는 적극성을 갖고 프로그램에 동참하면 결과가 더 양호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 학습클리닉 성공 사례
#사례1
동철(가명·중2)이는 겨울방학 때 학습클리닉을 찾았다. 지능이 높고 성취 욕구가 강한 편이며 한 번 책상 앞에 앉으면 2, 3시간씩 자리를 뜨지 않지만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할수록 스트레스는 쌓여갔다. 검사 결과, 동철이는 전체 지능(IQ)이 120으로 우수한 편이었지만, 언어성 지능(130)과 동작성 지능(101) 간의 심한 차이를 보였다. 이는 지적능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청각적 주의집중력도 27%로 낮게 나왔고, 정신운동속도를 알아보는 기호쓰기 항목 점수도 낮았다. 뇌파학습검사에선 집중력 지표인 베타-SMR파 역시 39%로 저조했다. 학습클리닉에서는 '산만하고 부주의한 성향으로 인해 타고난 지적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며, 학업 수행의 효율성도 상당히 낮다'란 종합평가를 내놨다. 부모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자책감, 자신감 저하, 학습동기 상실 등이 성적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수학과 과학에 뛰어난 동철이는 말과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아주 서툴렀다. 학습클리닉은 동철에게 학습법을 익히면서 내용의 핵심을 찾아내고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반복시켰다. 주의산만을 막기 위한 집중력강화 프로그램도 실시했다. 창의적인 문제를 풀고, 그 과정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과제를 되풀이하면서 과제 수행 속도가 서서히 빨라졌다. 지난 기말고사에서 전교 2등에 오른 동철이는 수학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으며, 과학고 입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사례2
재민(가명·초교2)이는 레고나 피아노 등 여러 개인 과외를 받았지만, 산만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과외 종목을 바꿨다. 재민이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요요' 같은 놀이에 쉽게 관심을 갖다가 곧 싫증을 낸다. 정작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 학습동기가 전혀 없고, 잘 울거나 화를 내는 등 감정표현의 문제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상대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부끄러움도 많았다. 재민이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바보, 멍청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학습클리닉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재민이의 전체 지능은 134로 매우 높았다. 하지만 주의산만과 과잉행동으로 부모, 교사, 친구들의 부정적인 반응 속에 자존심이 떨어져 잠재성을 잘 발휘하지 못한 상태였다. 학습클리닉에선 재민이와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재민이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게임을 통해 치료자와 친해지는 연습을 했다. 그런 뒤 자신감과 사회성 기술을 훈련하는 시간을 가졌다. 차츰 달라진 모습이 나타났다. 눈을 맞춰 인사를 하고, 표정이 밝아졌다.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잘 표현하는 것은 물론 자신은 '왕자' 성향이라며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김교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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