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 친일단체 '일진회' 창립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에 망명해 있던 송병준이 일본군의 통역으로 귀국했다. 그는 독립협회에 가담했던 윤시병, 유학주 등과 8월 18일 친일단체인 維新會(유신회)를 조직해 8월 20일 一進會(일진회)로 명칭을 바꾸고 회장에 윤시병을 추대하여 발족했다.

일진회는 왕실의 존중, 인민의 생명 및 재산 보호, 시정의 개선, 군정·재정의 정리 등 4대 강령을 내걸고 국정의 개혁을 요구했다. 일진회는 겉으로는 문명개화와 정치개혁이었지만 실제로는 한국 정부를 압박하면서 한일병탄의 길을 닦는 것이었다.

일진회는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여 지방에는 세력을 확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학당의 친일세력인 이용구 등이 조직, 전국적인 기반을 가진 進步會(진보회)를 흡수해 일진회에 통합했다. 이용구가 13도 지방총회장, 송병준이 평의원장에 취임했다. 이후 일본인을 고문으로 추대하고 일본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친일활동을 전개했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된 이후부터 더욱 매국행위에 앞장서 국권피탈안을 순종에게 올리기도 했다. 1910년 한일강제병탄 뒤 일진회는 해체되었다.

▶1031년 고려 강감찬 장군 사망 ▶1953년 소련, 수소폭탄 첫 실험 성공 발표

정보관리부 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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