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들에게 스탈린은 구세주였고 히틀러 나치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구했고 미국인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은 위대한 영도자였다. 그러나 스탈린의 또 다른 명성, 즉 러시아 황제들이 4세기 동안 죽인 사람보다 더 많은 수백만명의 자국민들을 죽인 살인자라는 악명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냉혹한 독재자 스탈린은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기초로 한 민중혁명을 공포에 의해 유지되는 전제주의적 독재정치로 바꾸어 놓은 장본인이었다."
『세상을 움직인 악』 미란다 트위스 지음, 한정석 옮김/이가서 펴냄/367쪽/1만9천500원.
"다윈은 자신의 주장이 불러일으킬 격렬한 반응을 예상하고 책의 출간을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였다. 불가지론자가 되고 나서도 다윈은 종교나 성직자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성직자들은 그를 공개적으로 모욕했고 윌버포스 주교는 일부 과학자들의 지원을 받아 다윈을 파문시키는 것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20세기에도 미국의 일부 주와 이슬람권에서는 다윈의 주장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게 완전히 금지했다."
『인류 역사를 진전시킨 신념과 용기의 외침 NO!』장 프랑수아 칸 지음, 이상빈 옮김/ 이마고 펴냄/2만2천원.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의 암울한 그늘을 걷어내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젊음을 불사르던 시절, "정의가 승리한 역사는 없다"고 학생들에게 공공연하게 말하던 교수가 있었다. 그 이후 그는 소위 민주화의 시대에 말을 갈아타면서 민주교수협의회 의장으로 대학의 총장이 되었다가 결국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았다. 그의 빛나는 성공(?)을 보면서 도대체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과연 악인가 선인가라는 문제는 인간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 즉 철학의 문제로 귀결되긴 하지만 이렇듯 현실은 그 판단을 유보시키기에 충분하다. 두 책은 선이 지향점임을 말하지만 우리에게 현실은 그 선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매순간 가르치고 있다. 권력은 늘 악에 가깝고 그 권력에 대항하는 것조차 늘 선일 수는 없는, 복잡한 판단의 세상에 우리는 서 있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고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아 바위산에 묶여 매일처럼 독수리에게 간(肝)을 쪼이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던 프로메테우스가 결국 제우스와 화해를 했을 때, 인류의 역사는 이미 선과 악의 선택이 유보된 것인지 모른다. 스탈린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구소련의 국민들이 눈물바다를 이룬 것과 패배한 스파르타쿠스가 반역자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과연 우리는 후세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안일과 타협인가?
전태흥 여행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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