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얼굴 반찬/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 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다 아시겠죠? 친절한 시인이 숨겨놓은 것 없이 다 이야기하고 있으니 군말이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문득 어머니가 무쳐주시던 콩나물 반찬이 생각납니다. 오래전부터 심심한 박나물, 가죽나물 장아찌, 콩자반과 등겨장이 사무치게 먹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맛이 얼굴 반찬 때문이었군요.

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 채 우리는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날마다 잘 입고 잘 먹고 잘 노는데도 속은 왜 이렇게 헛헛합니까. 그리운 얼굴은 다 밥상머리를 떠나고, 앉혀야 할 얼굴은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가버렸으니 그 빈자리가 시립니다. 시린 마음으로 식은 밥을 먹습니다. 삶이 식었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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