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노인 방문 보건활동하다가 만났는데요. 할머니랑 손자가 같이 사는데 남남이라네요. 할머니도 핏줄이 없고, 손자도 핏줄이 없는. 그런데 같이 잘 살고 있어요."
대구 중구보건소 방문보건팀에서 귀띔해준 말을 따라 찾아나선 길은 대구 토박이인 기자에게도 낯설었다.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5지구 끝자락에서 시작되는 주택가. 몇 번을 꺾고 꺾어 찾은 집은 대문을 열자 마당이 푹 꺼져 있는 희한한 구조였다. 출입문 옆 좁은 공간에는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폐지가 수북했다.
낯선 이의 눈길이 집안 곳곳에 닿자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귀 어둡고, 눈 어두운 노인들이 저마다 방문을 열어젖혔다. 할머니만 넷이었다. 누굴 찾아왔는가 싶은 호기심 찬 눈초리는 기자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열리는 문 하나. 머리를 내민 이는 황칠선(73) 할머니였다. "네 가구가 모두 홀몸노인이지만 이 집에는 '공공의 손자'가 살고 있다"는 방문간호사의 말이 빠르게 스쳤다.
배진영(13)군. 진영이는 그동안 '이웃사랑'에 소개됐던 아이들과는 달랐다. "부끄러울 게 뭐 있어요"라며 제법 굵은 목소리로 답하는 진영이는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했다. 사춘기 아이가 가정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불만이 없다는 말은 믿기 힘들었다. 오후 내내 함께하며 나눈 대화에서 진영이는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때론 엷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일상과 할머니에 대해 말했다.
"4년쯤 됐어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인천에서 대구로 왔으니까요. 그 전에는 외갓집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 전 기억은 가물가물해서 기억이 잘 안나지만요. 엄마랑 아빠는 소식이 없어요. 할머니는 제가 겨우 걸을 때쯤 저를 처음 보셨다고 해요. '강원도 할머니'라는 분이 저를 데리고 이 동네로 자주 놀러 오셨다고 하더군요. 대구에서 평생을 사신 할머니는 이 동네 토박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다섯 살 때쯤 부모님이 헤어지셨고 저는 외가에서 자랐다고 해요.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제가 초등학교 2학년 올라갈 때 그 '강원도 할머니'라는 분이 다시 저를 지금의 '우리 할머니'에게 맡기셨어요. 그건 기억이 나네요."
진영이의 말 중간중간마다 할머니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보탰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자녀가 없었던 이모댁에 양녀로 가서 자랐지요. 허리디스크, 방광염, 관절염…. 병명도 정확히 기억 안 나네. 병치레도 잦아서 결혼은 꿈도 못 꿨어요. 계속 혼자 살다가 '강원도 할매'가 애를 데리고 왔더라고. '할매라면 잘 키워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데려왔다'면서…."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홀몸노인과 소년가장. 두 사람은 20㎡(7평) 정도 되는 150만원짜리 사글셋 방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각자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돈은 40여만원. 할머니는 손자의 앞날이, 손자는 할머니의 건강이 걱정이다.
"이렇게 살다가 내가 갑자기 죽으면 어떡해. 그러잖아도 작년 4월부터 매달 3만원씩 진영이 앞으로 저금을 하고 있어요." 손자가 못 듣게 하려는 듯 한손으로 가려 말하는 할머니. "지금이 제일 좋아요.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할머니 건강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는 손자. 서로의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큰 힘처럼 보였다.
홀몸노인과 소년가장의 보금자리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글픔'이란 단어는 없었다. 방 안쪽 벽면에 할머니가 붙여놓은 '달마도'와 책장 사이에 놓인 손자의 '성경'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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