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베이징의 소금

액막이나 정화의식으로서의 소금 뿌리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전래 풍습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잡귀나 재수 없는 사람을 쫓는다며 대문 앞이나 마당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를 볼 수 있다.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서는 술을 썩게 만드는 마녀를 막는다는 의미로 술통 위에 소금을 한 줌씩 던져 놓는다고 한다. 재수 없는 일을 당하면 어깨 너머로 소금을 뿌리는 서양 풍습도 있다.

이런 소금 뿌리기 풍습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한국의 경우 무속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혹자는 옛날 후삼국시대 때 시작된 풍습이라는 설을 편다. 왕건과 견훤이 천하를 놓고 다툴 때 지렁이의 화신인 견훤을 막기 위해 왕건 진영에서 소금을 뿌렸다는 속설이다. 유래야 어떻든 절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쓰는 '소금이 쉴까?'라는 우리 속담에서도 소금의 정화력이나 불변성에 대한 믿음을 읽을 수 있다.

스포츠에서 소금 뿌리기를 하나의 중요한 의식으로 채택한 곳은 일본이다. 일본의 국기인 스모 경기에서 리키시(力士)들이 소금을 한 움큼씩 도효(土俵'씨름판) 바닥에 뿌린 후 경기를 시작한다. 이를 '기요메노시오'라고 하는데 소금을 뿌려 부정한 기운을 막고 씨름판을 맑은 기로 채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야구 경기에서도 기요메노시오가 처음 등장했다.

어저께 베이징올림픽 야구 예선 경기에서 한국에 무릎을 꿇은 일본팀이 이튿날 캐나다와의 경기에 앞서 그라운드에 소금을 뿌려댔다. 한국전 패배의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그 덕인지 일본은 캐나다에 1점 차로 신승했다. 한국전 패배 후 일본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신이 경기 운영을 잘못했다고 사과까지 했다.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큰소리를 치다 한국과의 기 싸움에서 밀렸으니 뭔가 특단의 비책이 필요했던 게다.

그런데 과연 일본이 미국이나 쿠바에 졌다면 소금을 뿌리고 감독이 직접 사과까지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을지 의문이다. 상대가 아니라고 여긴 한국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이어 올림픽에서도 당했으니 일본 내에서 난리가 났을 터이고 이런 난리법석이라도 떨어야 충격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게다. 1위로 결선에 오른 한국 대표팀과 턱걸이를 한 일본의 다음 경기가 궁금해진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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