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년 창간 60주년…'새고려신문' 배 윅토리아 사장

▲ 배 윅토리아 사장이 1면에 63주년 광복절을 기념하는 특집기사가 실린 새고려신문을 들고 있다. 최두성기자
▲ 배 윅토리아 사장이 1면에 63주년 광복절을 기념하는 특집기사가 실린 새고려신문을 들고 있다. 최두성기자

"우리 민족의 명맥은 끊겨선 안 되죠."

16일 '새고려신문'의 배 윅토리아(42·여·사진) 사장은 일제에 의해 청춘을 빼앗기고,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 조국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간직하고 있는 사할린 한인들의 넋두리를 전했다.

지금으로부터 63년 전인 1945년 8월 러시아의 관문인 사할린주 코르사코프시.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온 4만명의 한인들이 '조국의 해방' 소식에 들떠 코르사코프항으로 몰려왔다.

한국으로 가는 배가 올 것이라는 소식에 가까운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서는 물론, 300㎞ 떨어진 보르나에스크, 우글리고르스크 지역에서 수십일씩 걸어 4만명의 한인들이 항구 옆 언덕에 모였다. 그러나 배는 오지 않았다. 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언덕을 떠날 수 없었다. 추위에 얼어죽고, 못 먹어 배를 움켜쥔 채 쓰러져갔지만 남은 이들은 고국으로 가는 배를 기다렸다. 세월이 흐른 뒤 그곳은 '망향의 언덕'으로 불리게 됐다. 그 자리에는 지난해 그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이 세워졌다.

"1988년 한국과 러시아가 정식 수교를 맺기 전까지 사할린 동포들은 고국의 무관심과 러시아의 천대를 받으면서도 한민족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자식들에게 한민족의 뿌리를 전달하려 애썼던 1, 2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민족 정체성도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할린 유일의 한글신문인 '새고려신문'은 그런 동포들의 애환을 보듬으며 '환갑'의 세월을 함께 했다. 배 사장은 내년 6월이면 창간 60주년을 맞는 신문이 여러 차례 위기 속에서도 단 한 차례도 문을 닫지 않았음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최근 사할린 동포사회에도 위기감이 불어닥치고 있다.

"머지않아 사할린에서 한국말을 더 이상 듣지 못할 날이 올까 두려워요. 러시아 교육을 받고 자란 3, 4세대 대부분은 한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한글과 우리 문화를 전하는 신문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센 세월의 파고를 넘기엔 신문이 가진 힘은 약하다. 신문은 현재 턱없이 부족한 광고수입에 우리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기자와 직원들의 사명감이 없었다면 벌써 자취를 감췄을지도 모른다.

공산당 기관지였던 신문은 1990년 러시아에 불어닥친 개방화 물결에 맞춰 독립을 선언했다. 사멸되어가던 한민족 문화의 명맥을 잇고, 동포들의 자유로운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였다. 대가는 혹독했다. 사할린 주정부는 재정지원을 끊었고 사원들의 월급은 최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30명에 달하던 직원들이 하나 둘 떠났고 급기야 주5회 발행되던 신문은 주1회로 바꿔야 했다. '폭풍우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배와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안춘대(63·여) 기자는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발행을 미룬 적이 없었다. 독자들은 신문이 없었다면 사할린에서 한국어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평가한다"고 했다.

전직원이 5명에 불과하지만 신문은 사할린 한인들의 모국으로의 영구귀국, 일본정부의 전후보상, 친지만남, 한국어 교육, 한민족문화보급 등 다양한 주제를 기사화하고 있다. 배 사장은 "사할린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쓸쓸한 노후를 맞는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민족의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한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3, 4세대들에게 한민족의 핏줄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은 너무나 큰 과제"라고 했다.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 새고려신문=사할린의 주도시인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발행하는 유일한 한국어 신문이다. 1949년 6월 1일 '조선노동자'로 창간, 이후 '레닌의 길로'라는 공산당 기관지로 있다 90년 독립한 뒤 현재 제호를 쓰고 있다. 사할린 전역에 한인의 정치·사회문제를 다루며 발행 부수는 1천300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