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는 단순한 미술품 수요자가 아니다. 영국의 찰스 사치는 1980년대 영국 무명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해 국제 미술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20년 전부터 중국 현대미술에 관심을 기울였던 가이 울렌스는 최근 불어닥친 중국 미술 바람을 타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안목 높은 컬렉터들이 미술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그러면 대구지역 컬렉터들은 어떤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을까. 한국 미술시장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어 소개한다.
20여년 미술품을 수집한 여성 컬렉터는 1960년대 미국 산업사회의 꽃으로 태어난 팝아트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으로 관심을 끈 지역 신진 여류작가 송광연씨를 지목했다. 앤디 워홀 작품에서 차용한 이미지 위에 조선시대 민화에 나오는 꽃을 등장시켜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작품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작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 이유다.
또 그녀는 도시 사람들과 도시 풍경을 주제로 일관된 작업을 하고 있는 이민혁, 자화상 작업으로 국제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소연과 함께 세필로 향나무를 그리는 김천 출신의 문성식 작가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20대인 문성식 작가의 경우 제2의 이우환이 될 것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젊은 작가들 작품 가운데 아류가 너무 많다. 심지어 대학 졸업전시회를 가더라도 개성 있는 작품을 만나기 힘들다. 젊은 작가들이 유행을 너무 좇아가는 것 같아 아쉽다"며 "젊은 작가들의 경우 부침이 심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 물이 올랐다고 생각될 때 대표작을 구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 컬렉터는 사진 작품을 많이 수집하고 있다. 그녀가 눈여겨본 젊은 사진 작가는 재미동포 데미한이다. 한국 여인의 몸에 비너스상을 접목시킨 작품은 홍콩크리스티 경매에서 미술품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회화 작가로는 이우림씨를 꼽았다. 그녀는 "데미한은 독특하고 미에 대한 상식을 깨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가"이며 "'시크릿 가든', '몽(夢)' 등 이우림의 작품은 초현실적이며 몽롱한 긴장감이 감돈다"고 평가했다.
치과의사인 한 컬렉터는 류현욱, 추종완씨 등 지역에서 활동 중인 젊은 작가를 거론했다. 미술시장에서 조명받는 작가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비슷한 그림이 양산되고 있는 요즘, 이들 작가들은 시장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작가 정신이 살아 있는 작품을 남기고 있다는 것.
병원원장인 A컬렉터는 김동유, 이정웅, 김덕용, 정수진, 천성명 작가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김동유씨는 탄탄한 개념을 바탕으로 독특한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어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지역 출신의 이정웅 작가는 풍경, 정물에서 붓으로 나아간 회화적 변주가 현재까지 성공적이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고 설명했다. 김덕용씨는 나무판에다 소년, 소녀, 어머니, 한복 입은 여자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한국적 색채를 가진 유망작가이며 구상을 통한 추상 회화를 추구하는 정수진 작가는 페인팅 실력이 좋고 빨려들어갈 듯한 작품으로 해외에서 지명도를 넓히고 있다는 것. 천성명씨는 상처 입은 자신의 모습을 조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조각에 대한 국내 컬렉터들의 관심이 커지면 각광받을 작가라고 강조했다.
의사인 B컬렉터와 미술계 마당발로 알려진 C컬렉터는 노충현, 이형구, 여류화가 이림 등의 작가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림 작가는 얼굴을 주로 그리는 구상 회화를 선보이고 있으며 포항 출신으로 예일대를 졸업한 조각가 이형구씨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했다. 두 컬렉터는 기성 작가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지 않고 자기 색깔이 뚜렷하며 대중성도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점을 이유로 들었다.
대구지역 컬렉터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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