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의 한 중소기업(화섬업체)에 다니는 김동우(가명·43)씨는 올여름 휴가를 집에서 보냈다. 자식 둘을 공부시키면서 아직 더 갚아야 하는 주택 대출금 때문에 여윳돈을 만져본 기억조차 아득하다. 벌써 성큼 다가온 추석명절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다. 가계부는 적자로 향하고 있지만, 과일이며 생필품은 안 오른 게 없다. 김씨는 "회사 사정상 명절이나 휴가라고 해서 따로 돈을 챙겨줄 형편도 못돼 추석쯤에는 늘 생활비에 허덕인다"며 "올해는 원자재 상승과 업계 불황으로 회사가 어렵다 보니 그나마 있던 상여금도 깎일 판"이라고 했다.
올해로 입사 20년차인 포항공단 대기업 현장사원 A씨. 그는 8, 9월 두달 동안 월급과 정기상여금, 경영성과금, 추석상여금을 포함해 회사에서 1천500만원(명세서 기준)을 받는다. 덕분에 넉넉한 휴가를 보낸데다, 여윳돈을 어디에 굴릴지 궁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추석(9월 14일) 명절을 앞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주머니 양극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대기업들이 원자재 폭등 파고를 무난하게 넘기는 사이 중소기업들은 부도와 생존의 기로를 헤매면서 종사자들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이번 한가위달은 대기업 근로자들에겐 '보름달', 중소기업은 '그믐달'이 될 것 같다.
유례없는 불황 속에서도 포항지역 철강관련 대기업들은 올 상반기 동안 양호한 경영성과를 기록하면서 3∼5%가량의 임금인상까지 단행, 직원들은 여유 있는 여름휴가를 보낸 데 이어 별 어려움 없이 추석을 맞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완전히 딴판이다. 종업원 50여명의 한 대기업 하청업체가 8, 9월에 걸쳐 직원들에게 지급할 임금은 평균 잡아 월급과 추석선물비 등을 합쳐 300만원 남짓. 근로자 B씨는 "성과금이나 생산장려금 같은 명목은 중소기업 근로자들과는 상관조차 없는 단어"라고 했다.
기업들의 자금사정도 극과 극이다. 한 은행지점장은 "돈 빌리러 오는 중소기업은 신용도가 낮아 대출해주기 어렵고, 신용도가 좋은 기업은 낮은 이자에 주겠다고 해도 돈이 필요 없다고 한다"면서 "은행 금고에서 잠자는 추석자금이 많다"고 말했다.
은행 창구에서 제시하는 대출이자도 여력 있는 대기업에는 7% 초반이지만 신용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8%를 넘었고, 지난 설대목에 비해서도 1% 이상 늘어 연초에 비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율차이가 2%를 웃돌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과 주택건설업계의 부도 도미노를 우려하는 이른바 '9월 위기설'도 더욱 확산되고 잇다.
중소기업 대표 K씨는 "원청 대기업이 원가·경비절감을 이유로 하청경비를 계속 깎기만 하니 버텨낼 재간이 없다"며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는 흘러간 유행가가 돼 버렸다"고 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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