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전남 장흥

우리나라 지도를 펴고 서울의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쭉 금을 내리 긋는다면 어디에 닿을까. 금의 끝은 전라남도 장흥군과 맞닿게 된다. 장흥이'정남진(正南津)'이라는 또 다른 명칭을 갖는 이유이다. 한달 가까이 이 땅을 달구고 있는 찌는 듯한 더위를 뒤로 하고 이제는 어딘가에 스며있을 가을의 기운을 찾아볼 요량으로 택한 남도의 땅이 장흥이다.

싸늘한 비취빛의 남해바다가 가깝고, 남도 소리의 한과 멋을 그린 소설'서편제'의 작가 이청준의 고향이자 그의 깔끔하면서도 토속성이 진한 문체처럼 정겨움이 묻어나고, 넉넉한 남도인심 만큼이나 청정한 산과 들에서 나는 명품 농·특산물이 넉넉한 곳.

아직 다른 계절의 경계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무더위를 잊게 하는 초록 들녘과 푸른 산, 맑은 물이 있는 장흥은 그래서 미리 가을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가볼만한 땅이다.

#자연과 물의 어울림 '장흥댐'

장흥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인 탐진강을 막아 탐진호를 형성하고 있는 장흥댐은 주변 자연환경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이다. 탐진호와 장흥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댐 전망대에 서면 녹음의 산자락을 휘돌아 모인 맑은 물이 손에 잡힐 듯, 그리 크지 않는 호수를 이루고 있다. 물은 어찌나 맑은지 바닥이 흔히 들여다보인다. 명경지수(明鏡止水). 거울처럼 맑은 물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고 맑게 하는 마력이 있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또한 후텁지근한 도심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탐진호 전망대에 서있노라면 덥고 습한 올 여름은 어느 새 과거의 사건이 되고 만다.

전망대 옆 물 문화관에 들었다. 물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알리는 워터리움에서는 친환경적인 장흥댐의 또 다른 모습과 만나게 된다. 탐진강 물 속을 구현한 영상을 통해 이 곳의 생태계를 체험할 뿐 아니라 원시지구 탄생의 역사에서 물이 지닌 역할을 잘 표현해 놓았다.

댐 아래로 넓은 부지에는 생태문화공원과 전통남도의 문화지구도 조성, 시청각 교육의 효과를 100% 활용하게끔 해 놓았다.

#장수풍뎅이가 비상의 꿈을 꾸는'반월마을'

장흥댐에서 나와 23번국도를 따라 댐 최상류로 20여분 가면 청정한 시골환경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장흥군 유치면 반월마을(38가구, 97명)이 있다. 언뜻 보기에도 도로를 따라 반달모양의 취락구조를 갖고 있는 평범한 이 마을을 세인의 주목을 받게 한 주인공은 장수풍뎅이다. 친환경적인 유기농 논농사와 인근 산에 많이 자라는 참나무를 이용한 표고버섯을 주 소득원으로 하던 반월마을은 2004년 부업으로 장수풍뎅이를 기르면서부터 매년 1만여명의 외지인이 찾는 명품마을이 됐다.

장수풍뎅이는 표고버섯을 키우고 난 후 남는 참나무 진액과 폐목의 톱밥을 먹고 자란다. 알에서 애벌레로, 번데기에서 성충까지 꼬박 1년이 걸리는 장수풍뎅이 사육은 마을의 짭짤한 부업. 이를 위해 마을 위쪽 작은 야산아래 표고버섯 학습장과 생태 체험장, 물놀이장, 대나무 구름다리, 원두막 시설, 장수풍뎅이 사육장을 갖추고 외지인을 맞는다. 장수풍뎅이가 번데기에서 성충이 되는 매년 7월말에서 8월초까지는 '장수풍뎅이 축제'도 연다.

우렁이농법을 도입한 논에는 허리춤까지 자란 벼이삭 사이로 갓 알에서 깨어난 메뚜기들이 폴짝거리는가 하면, 익어가는 벼이삭 사이로 흐르는 개울 바닥을 들여다보면 1급수에서만 자란다는 가재들이 너나할 것 없이 꼬물거리고 있다. 반월마을 들녘을 거닐다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반월마을 진입 전 오른쪽 언덕엔 장흥선사유적문화관이 있어 다양한 고인돌의 형태를 감상할 수도 있다.

#선종이 처음 들어온 천년고찰'보림사'

반월마을에서 820번지방도를 따라 20여분 거리에 있는 신라사찰 보림사는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된 곳이다.

가지산 자락이 마치 U자형으로 포근하게 감싸 안은 보림사 경내는 넓고 잘 닦여진 평평한 절 마당에 대적광전과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균형감 있게 전각들이 배치돼 포근한 불국토의 이미지를 웅장하게 살려내고 있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들면 정면에 대적광적이 일직선으로 눈에 띈다.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3층석탑의 구조를 갖고 있는 두개의 탑(국보 44호)과 그 사이에 작은 석등이 가지런히 앞에 배치돼 있는 대적광전 안에는 법신불인 철조비로자나불(국보117호)이 모셔져 있다. 검은 빛의 철조비로자나불은 9세기경 불상양식으로 두터운 법의와 얇게 빚은 옷 주름이 선명하지만 손과 상체에 비해 무릎이 조금 큰 듯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대적광전 오른쪽으로는 2층 팔작지붕이 인상적인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보전 앞엔 대형 괘불을 걸어 놓았던 당간지주의 석축구조물이 남아 천년고찰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불교 미술사의 한 축을 엿볼 수 있다.

보전 뒤쪽으로는 바람에 흔들이는 비자나무 숲이 병풍처럼 펼쳐져 그 고고한 가람의 풍경이 바쁜 속세의 발길을 한참이나 붙잡아 놓는다. 절 마당 가운데 있는 보림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 후 다시 한번 절의 품세를 둘러보니 저 만치 보이는 가지산 정상의 푸른 하늘이 잉걸불처럼 이글거리던 찜통여름의 하늘을 밀어내고 있다.

◇장흥 가는 길=구마고속도로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옮겨 탄다. 남해고속도로 서순천나들목을 나와 순천시내를 통과, 가곡삼거리에서 여수방향 17번국도를 탄다. 이어 남승룡길에서 우회전, 벌교방향 2번국도를 타고 이정표대로 가면 장흥에 다다른다.

여행팁-장흥 재래토요시장과 먹을거리

기름진 논과 산, 바다가 가까워 일대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수산물이 모이는 곳, 장흥을 찾았을 때 빼놓을 수 없는 명물장소가 장흥읍내 토요시장이다. 읍내를 흐르는 탐진천변에 있는 상설시장인 토요시장은 그야말로 땅과 바다, 산에서 나는 특산물이 모이는 전통 재래시장이다.

지역 특산품인 장흥한우부터 찰보리, 바지락, 갯장어까지 없는 게 없다. 갯장어는 어른 팔뚝만한 크기도 있다. 이곳에선 좌판을 놓고 파는 전라도 아주머니들의 구수한 사투리도 마냥 정겹기만 하다.

"아따 문어는 다리가 짧고 낙지는 길지라이잉~. 다리 수는 8개로 같지만이잉." 문어인지, 낙지인지 몰라 묻는 낯선 이방인에게 한 아주머니가 설명을 덧붙여준다.

옆에선 집게발을 치켜든 꽃게가 연신 수족관을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상인은 이를 다시 주워 담기에 여념이 없다. 호객하는 상인과 장을 보러 나온 손님들 간 인사도 오간다.

점심 무렵임에도 이른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시장 안은 북적거리고, 하나라도 더 팔려는 상인들의 목소리 또한 높아만 간다. 보고만 있어도 활력이 넘친다. 삶의 현장에서 전달되는 무언의 음파가 가슴을 때리고 맞은 가슴의 박동이 다시 공명을 울려 시장 안으로 퍼져가는, 그래서 재래시장은 처진 삶에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장흥의 먹을거리=장흥은 남도의 물산이 풍부한 만큼 먹을거리도 다양하다. 장흥의 특산물인 한우고기를 비롯해 산과 들의 농산물로 상다리가 휘게 찬을 꾸린 남도정식, 남해의 갯벌에서 나는 꼬막조개를 이용한 꼬막정식 등은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 남도의 대표적 음식들이다. 특히 갯벌을 뛰듯 다니는 짱뚱어로 끓인 얼큰한 탕은 별미 중의 별미에 속한다.

여기에 여름철에 많이 잡히는 서대를 매콤달콤한 고추장에 버무린 서대회무침은 반찬과 술안주로 제격이다. 가격은 짱뚜어탕 6천원, 서대회 1만5천원~2만원, 꼬막정식 1만원 선으로 장흥토요시장 인근 식당 등지에서 맛볼 수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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